[버팀13] 상사의 질책에 "죄송합니다"라는 방패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는 버팀의 기술

by 봄날의 초원

내가 쓰는 '버팀'은

꾸역꾸역 죽지 못해 내뱉는 비명이 아니다.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중심을 잡는 고요한 투쟁에 가깝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산다.

고민과 고뇌 없이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나의 글은 그 치열하고도

평범한 하루들에 대한 내밀한 기록이다.


나를 지탱하는 뿌리는

'훌륭하진 않아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

이라는 자부심이다.

여기에 '나는 늘 운이 좋은 편이다'라는

자기 암시를 겹겹이 덧칠하며 산다.


화려한 승리를 갈구하며 남을 짓밟지 않지만

우울한 패배에 나를 무력하게 던져두지도 않는다.

무언가에 애쓰지 않으면서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큰 나무가 되고 싶다.

듬직한 그늘이 되어 주변의 상처를 막아줄 수 있다면

나의 버팀은 그것으로 족하다.


조직의 논리는 때로

개인의 정체성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는다.

성과를 재촉하는 상사의 거친 목소리가

사무실의 차가운 공기를 날카롭게 가른다.

왜 더 독하게 굴어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느냐는 질책이

화살처럼 내 가슴을 향해 날아온다.

그럴 때 나는 더 이상의 군더더기 변명 대신

심플하고 명확한 사과를 선택한다.

"죄송합니다"라는 그 짧은 한마디로

내게 쏟아지는 공격들을 무장해재 시킨다.


이 말은 비굴한 항복 선언이 아니라

내 내면의 영토를 지키기 위한 단단한 방패다.

상사는 성과를 내야 하는 그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나는 나를 지키는 내 일을 하는 중일뿐이다.

입술은 미안함을 전하지만

나의 영혼은 결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비굴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더 소중한 내 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을 긋는 것이다.

사과라는 형식의 통행료를 기꺼이 내고

나는 다시 나만의 평온한 영토로 유유히 돌아온다.


때로는 내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고 일하기를 바란다.

물론 나를 다 깎아먹을 만큼

내가 대단하거나 멋진 성인군자인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마음을 지켜내는 태도가 결국

진정한 성과를 만든다고 굳게 믿을 뿐이다.

심리적 안정감이 숨 쉬는 조직에서만이

비로소 지속 가능한 숫자가 건강하게 자라난다.

공포로 세운 성벽은 겉보기엔 높을지언정,

그 안의 사람들은 금세 시들어버리기 마련이다.


상사가 나를 '욕심 없는 사람'이라 부르며

답답한 듯 혀를 차도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내가 충분히 괜찮은 사람임을 알고,

나의 운이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뿌리가 단단한 나무는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

가지 몇 개쯤은 기꺼이 흔들리게 내어준다.

흔들리는 잎사귀들은 잠시 소란스러울지언정

땅 밑 깊숙이 박힌 중심은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직장이라는 거대한 숲에서

말라죽지 않고 오래도록 버티는 유일한 기술이다.


나의 이 기록들이 '이렇게 힘들다'는

처절한 한탄으로 읽히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누구나 어렵게 오늘을 살아내지만, 그 삶 속에

항상 고통만 가득 차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의 문장들이 독자들의 주머니 속에서

가만히 언 손을 녹여주는 작은 손난로가 되었으면 한다.

거창한 위로의 말 대신

"나도 여기서 이렇게 버티고 있다"는

담백한 신호를 당신에게 보내고 싶다.

건조하지만 은은한 온기를 문장마다 담아,

나는 오늘도 나의 자리에서 굳건히, 그리고 잘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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