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보지 않아도 내 몫의 값을 다하는 정직에 관하여
나의 버팀은 거창하지 않다.
훗날 오늘의 기록을 들춰보았을 때,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지 않을 만큼의
밀도를 채우는 일이다.
대학 시절, 서울의 한 빌라촌에서 과외를 했다.
나는 프로가 아니었다.
수업 시간은 지켰다.
그러나 수업 전후로는 학생과 비디오 게임을 하였다.
학생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자기기만으로 나 자신을 속였다.
사실은 그저 시간을 흘려보냈을 뿐이다.
수업이 끝날 무렵이면 학생의 어머니가 생업을 마치고 귀가했다.
어머니는 사과나 배를 깎아 접시에 내어주셨다.
어머니는 특별히 고단해 보이지 않았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분도 아니었다.
그저 자기 일을 마치고 돌아온
여느 직업인의 모습이었다.
접시 위의 사과는 아삭했다.
그 달콤함 뒤로 미묘한 불편함이 남았다.
그것은 부채감이었다.
내가 가볍게 여긴 그 시간은,
누군가가 직장에서 정직하게 버텨내며 맞바꾼 결실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직장인이 되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무겁다.
내가 직장에서 치열하게 버티는 것은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다.
아이의 웃음과 아내의 평온은 그 숫자 위에서 자라난다.
그러나 그 치열함 속에서 굳이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나 자신을 위해서다.
월급의 값어치만큼 프로의 결과물을 내놓고 싶다.
그래야만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
누가 보지 않아도 깎아놓은 사과 앞에 당당한 것.
그것이 내가 정의하는 가장 현실적인 버팀의 기술이다.
스스로에게 떳떳한 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정당한 몰입을 선택할 때,
직장은 나만의 자존감을 지키는 영토가 된다.
책상 앞에 앉아 오늘을 가늠한다.
사과를 깎듯 정갈하게 하루를 다듬는다.
업무의 마침표를 찍고 일어서는 순간,
나 자신에게 개운한 인사를 건넬 수 있도록.
나는 나의 자리에서 굳건히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