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시대, 나와 내 사람을 지키는 법
바쁘지만 평온한 하루였다.
폭풍 같은 화요일부터 목요일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금요일이다.
월요일의 한가함은 아득한 옛일 같다.
어쩌면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상이
나를 지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당히 소란스러워야 시간도 빨리 가고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니까.
요즘 나는 팀원들에게 부쩍 자기 어필을 강조한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더 많이,
더 분명하게 드러내라"라고.
말을 내뱉으면서도 마음 한편이 텁텁하다.
이것은 진짜 일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일을 하는 '척'을 권하고 있는 것일까.
씁쓸한 허무가 입안에 까끌하게 남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조직의 온도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이.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의 공기가 달랐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때의 우리는 전력으로 회사를 위해 뛰었다.
'회사의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일했다.
누구 하나가 휘청이면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던 시절.
때로는 무모하고 야만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 안에는 뜨거운 낭만이 함께 흐르고 있었다.
이제 그 낭만은 오래전 꺼진 난로 주변에 남은,
잡히지 않는 희미한 온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일터에서 '동료를 위한다'는 개념은
낡은 카세트테이프처럼 생경하다.
각자의 생존이 우선인 각자도생의 시대.
나 역시 예전처럼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내 사람들을 지켜주려 애쓸 뿐이다.
팀원들에게 어필을 강조하는 나의 조언도
실은 그 맥락 위에 있다.
내가 팀원들을 지켜주고 싶어도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나에게는 그들을 보호할 명분도, 근거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증명하듯,
팀원들에게도 스스로를 증명하라고 등을 떠민다.
그래야만 내가 리더로서 그들을 지킬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
어필이라는 옷이 때론 가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삶이 나에게 요구하는 역할이 '생존'이라면,
그 옷 또한 기꺼이 입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겹겹이 껴입은 그 외투 아래에
어떤 마음이 숨어 있느냐는 것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나를 증명하는 것.
그리고 내 팀원들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그들에게 스스로를 어필하라고 독려하는 것.
부서지지 않을 만큼만 힘을 준,
이 투명한 방어선 같은 책임감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품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품격인지도 모른다.
정신없는 한 주가 저문다.
누군가는 그저 버텼을 뿐이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우리는 오늘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애썼음을.
어제의 낭만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오늘을 버티는 우리에겐 여전히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
나를 지키고, 내 곁의 사람들을 지키는 것.
그 마음만은 잃지 않은 채,
우리는 또 내일의 전장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어깨 위에도
무거운 생존의 외투가 걸쳐져 있을지 모르겠다.
그 옷이 당신을 너무 옥죄지 않기를,
그 안의 온기만큼은 오롯이 당신의 것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