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16] 운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

회사라는 외투를 벗고도 남는 것

by 봄날의 초원

사람들은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그렇지 않다.

지금의 기억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과거는 그저 막막한 안개일 뿐이다.

나는 지금의 내가 마음에 든다.


나는 운이 좋은 삶을 살고 있다.


고3 때 본 수능 성적은 모든 모의고사보다 잘 나왔다.

대학도 그랬고, 취업도 그랬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혔다.

내 점수는 이상하리만큼 알뜰하게 쓰였다.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싶을 때마다 길이 열렸다.

사람이 나타났고, 문제가 풀렸다.

내가 정말 운이 좋은 것인지,

그냥 그렇게 믿어버린 사람인지 모르겠다.

타인의 운을 재는 계기판 같은 건 애초에 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이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고,

꾸준히 하면 결국에는 풀린다고.


허준이 교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그 근거가 사라지면 함께 무너진다.

나의 긍정은 딱히 뿌리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오래간다.


우주의 기운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잘 될 거라는 믿음은 생존에 가깝다.

이 착각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를 넘기게 해 줄 뿐이다.


결국 조금씩 쌓는 수밖에 없다.

나는 매일 그렇게 한다.


작년 내내 정신과를 다녔다.

회의가 끝난 뒤 자리에 혼자 남아 있던 날들이 있었다.

메일을 보내고도 몇 번씩 다시 읽었다.

의사는 이제 약을 끊어도 되겠다고 말했다.


업무 능력이 갑자기 좋아진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버벅댄다.

여전히 허둥대고, 가끔은 깊이 가라앉는다.

다만 예전보다 빨리 나온다.


성심껏 했으니 결과는 받아들이겠다는 마음.

될 대로 돼라지 하는 배짱은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에게는 생기지 않는다.


글쓰기가 약을 대신했다.

명함에 적힌 회사 이름은 나의 본질이 아니다.

그건 잠시 빌려 입은 두툼한 외투 같은 것이다.


나는 외투를 벗고도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회사 다니는 누구라는 말을 빼고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브런치 작가’라는 작고 귀여운 명함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누구의 이름도 빌리지 않은 자리다.


여기서 나는 조금 편해진다.


나는 나의 운을 믿는다.

그리고 그 운이 머물 자리를 매일 닦는다.

하루하루 쓰는 일은

내 운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다.


나는 그냥 나의 운을 쓸 뿐이다.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좋겠지만,

닿지 않아도 괜찮다.


이 정도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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