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허용하기 어려운 감정이나 사실을 허용되는 것으로 바꾸어 표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표현하다 보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게 된다. 이 방법은 편리하고 쉽지만 실제 문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수령에 빠지게 된다.
나는 얼마 전, 어학원에서 한 단계 높은 반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저녁마다 지쳐 아무것도 못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르바이트와 어학원 생활을 병행하는 게 나한테 무리 었구나.’하는 생각에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정했다. 그런데도 내 피로는 전혀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수업시간에 내가 지치는 진짜 이유를 자각했다.
‘이 수업이 나한테 버겁구나.’
수업이 바뀌면서 수업에 참여하는 친구들도 바뀌었는데, 대부분이 라틴 출신이다. 나는 그들의 독특한 억양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지 않으니 이야기에 끼지도 못했다. 그러니 수업이 마치면 좀비처럼 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에게 솔직하게 토로했다. ‘친구들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고, 매번 모르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재밌지도 않아. 그래서 좀 속상하고 힘들어.’
선생님은 이번주 주제가 여행이라 특히 그랬을 것이라며 다음 주에는 다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한 리스닝을 돕기 위해 중간중간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맥락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실제 그다음부터 내 피로도가 확연히 감소했다.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그걸 타인에게 드러내는 일은 참 어렵다. 들키고 싶지 않은 사실들을 똑바로 직시하고 인정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번 사례에서도 나는 가장 먼저 내가 어떤 점에서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힘들어.’ 그런데 사실 이렇게 고백하는 것보다 ‘아르바이트와 어학원 생활을 병행하니까 힘들어.’가 훨씬 자존심이 덜 상하지 않는가.
하지만, 내 감정에 더 솔직해질수록 문제는 더 쉽게 해결된다. 솔직해져야만 진짜 문제를 알 수 있고, 진짜 문제를 알아야 개선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요즘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진짜 그거 때문이야?’ ‘그게 왜?’
묻고 물어야만 스스로 만든 거짓말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