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종종 사주를 본다. 엄마가 사주를 보고 왔다는 소리를 들으면 나는 늘 설레는 마음으로 묻는다. “나는 뭐래? 성공할 운명이래? 엄마 난 내가 진짜 성공할 거 같아.”
호들갑을 떨어대는 나에게 엄마는 맨날 이렇게 대답한다. “뭐라더라. 기억이 잘 안 나.” 이렇게 기억도 못 할 거면서 뭐 하러 사주를 보느냐고 구시렁거리다가 혼자서 생각한다. ‘음, 그렇게 엄청나고 대단한 사주는 아닌가 보군.’
그러다 엄마가 갑자기 한 마디를 했다. “아, 맞다.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 사주래. 대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은 얻는다더라.” 역시나 일확천금 대박 사주는 아니었나 보다. 실망스러워서 괜히 툴툴거렸다. 장항준 감독님처럼 소위 꿀 빠는 사주였으면 좋겠는데 요행을 바라지 말라니. 왠지 사 본 적도 없는 로또가 다 꽝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저 말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볼살에 직방이라는 윤곽 주사를 맞으러 갔다가 저혈압 문제로 나 혼자 시술받지 못했던 날, 시험 족보를 얻어 공부했다가 낮은 점수를 받았던 날. 역시나 나는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 사주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오늘 우연히 한국인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또 저 말이 생각났다. 우리 카페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단골이 아니고서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바로 한국인 손님이다. 나는 한국인을 기막히게 잘 찾는데, 한국인만 보면 그렇게 말을 걸고 싶어 진다. (사장님 몰래 할인이나 서비스도 많이 준다.)
이야기를 나누다 그분이 바로 앞 도넛 팝업 스토어에서 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도 지나갈 때마다 종종 봤던 곳이었다. 늘 손님은 없고, 아르바이트생들은 편하게 앉아 휴대폰을 하고 있어서 속으로 엄청 부러워했던 그곳이었다. 그런데! 더 부러워할 만한 사실을 알게 됐다. 바로 시급이 나보다 3,000원이나 높다는 것이었다. 하.
나는 하루에 400잔이 넘는 커피를 만드느라 종아리 압박 붕대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지경인데 저런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니. 알바를 구할 때도 요행을 바라면 안 되는 사주인 건가. 부러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딘가 씁쓸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잠시 몰려드는 손님들 탓에 다시 커피 만들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는 친구가 내 라테 아트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Judy! 너 갑자기 왜 이렇게 라테 아트가 예뻐진 거야? 너 진짜 여기에 재능이 있나 봐.”
갑작스러운 칭찬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나 매일 라테 아트 동영상 보잖아. 그거 보고 한 번씩 연습하다 보니까 늘었나 봐.” 그랬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노력한다고 다 늘지는 않아. 노력해서 느는 것도 재능이야.”
그 순간 다시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뒤 문장이 떠올랐다. “대신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은 얻는다더라.” 생각해 보면 이 말도 맞았다. 윤곽 주사는 맞지 못했지만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트레이너 선생님이 부러워할 만큼 근육이 잘 생기는 나였고, 운 좋게 혹은 낙하산으로 턱턱 취업하진 않았지만 인턴 시절 노력한 만큼 성과를 잘 내서 정규직 제안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족보는 통하지 않았지만 밤새워서 열심히 공부한 결과 수석 졸업을 했다.
아르바이트만 해도 그랬다.
내가 만약 도넛 숍에서 일했다면 커피 만드는 기술을 얻을 수 있었을까? NO.
이렇게 매일 같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과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NO.
고생의 시간이었지만 그 고생에는 반드시 선물이 뒤따랐다. 노력한 만큼 아니 고생한 만큼 달콤한 보상이었다.
얼른 기억해 내라고 닦달하는 나를 달래기 위해 엄마가 아무 말이나 한 건지 아니면 저게 정말 내 사주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저 말을 믿고 싶어졌다.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노력을 할 것이 분명한데, 노력하는 대로 이뤄지는 사주라? 나한테 이보다 더 완벽한 사주는 없을 것이다.
요행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노력한 만큼만 내 인생이 흘러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