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Jul 21. 2023

Q. 호주에서 집 구하기란

A. 하늘의 별 따기

얼마 전 집을 옮기기로 결심하고, 용기를 내서 주인분께 노티스를 드렸다. 노티스란 나가기 전에 미리 이사 사실을 알리는 것인데, 호주에서는 보통 2주 전에 말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동안 집주인과의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이 집에 머물렀던 이유는 마음의 여유와 에너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경 쓸 일이 이렇게나 많은데 다시 집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기도 했고, 집을 찾는다고 해도 이 짐을 다시 포장할 자신도 없었다. 사실 입주하던 날,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짐을 옮기면서 앞으로 그냥 이 집에서 정착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만약 집을 구하지 못하면 그 짐을 다 들고 백팩커스(여러 명이 한 방에 머무는 형태의 숙소)로 들어가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백팩커스는 보통 시설이 그리 좋지 않고, 공용 주방과 욕실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렴하냐? 그것도 아니었다. 가장 억울한 건 이러한 컨디션의 숙소가 하루 5만 원 정도라는 것이다. (2명 이상이라면 더 저렴한 에어비앤비나 호텔도 찾을 수 있다.)


물론 백팩커스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혼자 여행을 떠나면 백팩커스를 이용하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늘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집을 포기하고 백팩커스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나는 몸보다 마음이 힘든 걸 택한 것이다.

그렇게 버티기를 몇 달, 별안간 노티스를 내기로 결정했다. 만약 2주 뒤까지도 집을 구하지 못하면 친구들 집을 돌아다니며 버티거나 아니면 짐만 친구들 집에 맡겨두고 백팩커스로 들어가지 뭐? 하는 가벼운 용기가 난 것이다. 아마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에너지가 충전되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하루 2시간씩을 할애해 한국의 직방 같은 어플들과, 페이스북을 미친 듯이 뒤졌다. 그리고 나에 대한 소개를 간략히 적어 그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원하는 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가 원했던 집의 조건은 이런 것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이 있을 것, 화장실을 같이 사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여자일 것, 집주인이 너무 예민한 사람이 아닐 것, 교통비와 집세를 합쳐 주 300불이 넘지 않을 것, 벌레가 없는 깔끔한 곳일 것, 저녁에 너무 시끄럽지 않은 집일 것, 가능하다면 방에는 창이 있고, 창으로 초록색 풍경이 보일 것, 집에 너무 많은 인원이 거주하지 않을 것(4명 정도), 동네가 예뻐서 산책하기 좋을 것.

내 기준 평범한 조건이었으나, 막상 찾으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우선 시티 부근의 집을 찾으려고 하면 내가 설정한 금액으로는 창문 있는 방을 찾기 어려웠다. 또 좀 저렴한 집에는 여러 명이 같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남녀가 같이 머물렀다.

이렇게 실의에 빠질 때쯤, 같이 일하는 친구 케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물었다.

“너 아직도 집 못 구했어?”

응, 이러다가 길에서 잘 지도 몰라. 만나면 인사해 줘.

“ㅋㅋ 주디, 나도 좀 알아볼게. 내가 이런 걸 부탁할 친구가 두 명 정도 있거든. 우선 물어볼게.”

정말? 제발 됐으면 좋겠다. 마음만이라도 정말 고마워.

사실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 친구들이 거주하는 집이 내 조건에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고, 그들의 조건에 내가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들의 집에 남는 방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또 어플들을 뒤지고 있는데, 케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구체적으로 네 예산이 얼마인지, 언제까지 머물고 싶은지 알려줄래?” 자기 친구 집에 남는 방이 하나 있다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그때부터 미친 듯이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친구가 소개해준 집은 정말 신기하게도 모든 조건에 부합했다. 우선 가격이 지금 거주하는 집보다 저렴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설이 훨씬 좋았다. 2층 집을 두 명이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화장실이 두 개라 나 혼자만의 화장실을 가지게 되었다. 또 방에는 커다란 침대가 있었고, 침대 옆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 눈을 뜨면 초록색 예쁜 풍경들이 가득했다. 또 글을 쓸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고, 편안한 분위기의 거실이 있었다. 또 집이 2층이라 서로의 생활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같이 지낼 친구가 믿음직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난 집주인에게 호되게 당했던지라 믿을 수 있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랑 살 수 있다면 묻지도 따질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딱 하나 단점이 있다면 지금 일하는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직장과 가까운 곳 집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집에 이미 사랑에 빠진 뒤였다. 나는 이 사랑스러운 집에 홀려 이 문제를 그냥 잊기로 했다. ‘지금 집도 한 시간 정도 걸리는데 뭐’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이 집이 정말 좋을지, 그 친구와 내가 잘 맞을지는 지내봐야 알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 집을 구했다는 그 사실 자체로 충분히 행복하다. 집이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한국에서는 정말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행복이다. ​​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 한 달 생활비 리뷰 2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