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08. 2020의 기록
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다. 나서서 이것저것 변화시키는 용감무쌍한 사람까지는 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깊게 공감하고 당사자를 뛰어 넘는 분노를 보여주기도 한다.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고선 일주일이 넘게 관련 역사적 사료를 파헤쳤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돌려보곤 했던 내 최애 프로인 동물농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꼭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동물학대 꼭지였다. (동물학대를 좋아한다는 것은 결단코 아니다.) 공신력 있는 방송에서 그런 불쌍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뤄주고, 함께 분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다 같이 분노하고 다 같이 목소리를 높여 세상을 변화시켰으면 했다. 일찍이 대중의 힘을 깨달은 나(?)
그랬던 내가 최근에는 TV보는 습관이 조금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 내용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나는 다른 것을 보고싶다고 생각하긴 커녕, 부들거리기에 바빴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회피하고싶은 내 바람과 달리 최근 TV 프로는 알싸한 청양고추 맛으로 가득 채워지는 중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를 뛰어넘는 기가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야기들이 TV에선 '실화'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영된다. 채널A의 <애로부부>가 대표적이다. 그런가하면 이혼한 부부가 재회해 서로 왜 이혼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매회 시청자들에게 납득(?)시킨다. 내 일이 아님에도 답답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그럼 채널을 돌리면 되는데, 이 청개구리 손은 미동이 없다. 너는 스트레스 받아라~나는 리모컨을 들지 않을테다~.가뜩이나 TV 볼 시간도 줄어서 한 번 볼때 아주 알차게 재미있는 내용만 마주하기에도 아까운데. 왜이렇게 방송에선 짜증나는 이야기들만 나올까. 나는 또 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가. 세상이 점점 자극을 찾는 것 같다. 자극엔 쉽게 중독된다. 끊고 싶어도 쉬이 끊어낼 수 없다. 굉장한 의지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애초에 자극받지 않을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데...내가 자극을 끊어내기 어려운 것만큼이나 방송 제작자들도 시청률을 포기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들은 대중이 무엇에 혹하는지를 나보다 훨씬 잘 안다. 이제 웬만한 이야기는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 현실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다. 얼마나 더 매워져야하니?
하다못해 뉴스도 그렇다. 매번 정치권의 갈등, 사회의 사건사고 기사들이 지면을 채운다.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잖아요? 알게모르게 선행을 베푸는 작은 천사들이 이 세상엔 많다. 그런 천사들을 발굴해 사회의 선순환을 기대하는 기사는 왜 찾아보기 드문 것일까. 비리를 파헤치고, 부조리와 불합리를 고발하는 것은 응당 언론이 해야 할 일이며 사회에서도 아주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맨 뉴스가 오로지 칼칼한 맛으로만 채워지면 눈이 따갑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 작은 천사들을 찾아 엮어내는 기획기사를 보고싶다.
후...내가 그 혁신을 시작해야하나...그럼 얼른 기자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