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부지! 안녕,(외할아버지에 대한 단상)Sep 06. 2020의 기록
오늘 할머니의 이장이 있는 날이다. 얼마 전 할머니가 그렇게 사랑하시던 할아버지가 할머니 옆으로 가셨는데, 할아버지 유골함과 할머니 유골함을 같은 디자인으로 맞추기 위해서다. 아침 일찍 들려오는 엄마의 분주한 준비 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 다시 잠들었다. 다시 잠들었을 때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꿈 속에서도 여전히 49일 시한부를 앞두고 이승을 돌아다니는 한 줌의 영혼이었다. 꿈 속에서 우리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을 위해 한 자리에 모여있었다. 늘 그랬듯 거실 한 가운데 상을 놓고 가족들이 둘러 앉았다. 숙모들과 정확히 누군지는 모를 가족들이 주방 쪽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찬이는 작은 상에 앉아 밥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옆에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보였다. 빨간색과 주황색이 섞인 오묘한 색의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내 눈에만 보이는 존재로 할아버지는 찬이를 바라보고있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는 꿈 속에서도 찬이 바라기다.)
할아버지 등을 한참을 쓰다듬었던 것 같다. 꿈인데도 따뜻해서 놀랐다. 할아버지 등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느낌은 어떤지 아직 너무 생생하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쓰다듬으면서 흐느끼다 잠에서 깼다.
이상하게 돌아가신지 8년이 된 할머니도 그렇고 할아버지도 그렇고 습관과 느낌 행동들이 너무너무 생생하다. 그래서 꼭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는 것만 같다. 아빠가 매 끼니마다 할아버지 상식을 챙겨드리는데 할아버지가 꼭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실 것만 같다. 그러니 엄마의 20년 된 불면증도 없어진 것 아닐까? 정말 신기할 노릇이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가장 슬펐던 건, 그간의 할아버지 인생이 나에게도 그려져서다. 그동안 할아버지를 너무 무채색의 존재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슬픔도, 쓸쓸함도 없는 그냥 자세하지 않은 존재. 그렇게 생각했었다. 근데 할아버지의 가장 마지막 친구였던 돌봄 할머니가 오셨을 때, 그제서야 깨달았다. 할아버지도 참 쓸쓸했겠다. 생전에 할아버지가 돌봄 할머니 집에 놀러가서 남편분과 셋이 식사를 하셨다는 것을 듣기도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 참 슬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없이 노년의 부부를 마주하던 할아버지의 기분은 어땠을까. 전에 미타원에서 할머니 앞에 털썩 주저앉아 "여버!(할아버지 특유의 말투) 나 왔어!" 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의 오랜 시골 친구분들이 오셨을 땐 할아버지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아 슬퍼졌다.
나는 친가 쪽 보다 늘 붙어 살았던 외가 쪽에 애정이 더 큰 편인데, 그래서 외할머니/외할아버지도 그냥 할머니, 할아버지라 부른다. 오히려 친할머니랑 친할아버지를 수식어를 붙여 부른다. 우리 할아버지한텐 원래 반말을 썼었는데 머리가 크고 나서 부턴 반존대를 썼다. 오히려 꼬박꼬박 존대하는게 어색하다. 제목도 그래서 존댓말을 쓰지 않았다. 또, 할아버지랑 지금은 잠시 이별했지만 뭔가 이번엔 그런 확신이 들었다. 먼 훗날 내가 죽으면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꼭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래서 영원한 이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제목이 '안녕'인 것도 그래서다. 그런데...남들이 보기엔 예의 없는 손녀처럼 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