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변
부모가 되지 못해 아직은 자식 입장으로 변을 합니다
얼마 전 옛 직장 선배의 딸의 입시결과를 전해 들었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좋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입시 결과는 주관적인 것이라 축하한다는 말은 그만두었는데 선배가 먼저 나는 만족한다고 덧붙인다. 나는 만족한다는 표현은 객관적으로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는 자랑이 아니라 딸의 실력에 대한 겸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딸내미는 마음에 안 차서 벌써부터 반수 준비를 하겠다고 한다며, 그러라고 했다 하신다.
"좋은 아버지시네요."
라는 내 말에 선배는 되묻는다.
"자식이 하겠다는데 말리는 부모도 있냐?"
같은 해에 딸을 대학교에 보낸 다른 지인은 딸이 평소 실력에 훨씬 못 미치는 수능 성적을 받아서 속상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재수는 결사반대라고 한다. 재수를 하느니 차라리 지금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라며, 공무원 시험 칠 건데 대학을 어디 나오는 게 뭐가 중요하냐고 한다.
사실 고등학교 다닐 때나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 이제와 돌아보면 대학 그게 내 인생에 뭔가 싶다. 물론 학벌로 설움 받아 본 적 없는 자의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앞의 지인의 말처럼 공무원 시험 준비할 건데 대학을 어디 나오면 어떻고 또 안 나오면 어떠냐는 게 어쩌면 맞는 말일지 모른다. 본인이 공무원이니까 잘 알고 하는 말이겠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학이 실제로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냐가 아니다. 부모가 얼마나 자식을 존중하냐이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는 제쳐두고. 경제적으로 서포트를 해줄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재수를 반대하신다면 그러한 결정을 하신 부모님의 슬픔은 내가 감히 헤아리기도 어려울 것이다. 위의 나의 지인과 선배는 비슷한 경제 수준이다. 오히려 나의 선배는 외벌이, 지인은 맞벌이라 소득 수준은 지인이 더 나을 것이다.-
어쩌면 지인의 딸은 지인이 시키는 대로 재수를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에 빨리 붙어서 빨리 안정을 찾을지 모른다. 어쩌면 옛 직장 선배의 딸은 반수를 하느라 한 학기 정도 대학생활을 희생하거나 얼마간 방황의 시간을 가질지 모른다. 그래서 지인의 말이 맞았고 지인의 딸이 결과적으로 나은 인생을 사는 것일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을 해 가는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중고등학생들은 입시 앞에서 그러한 과정들을 지연하고 포기해왔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까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아예 포기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슬픈 일이다.
대입이 끝나면 우리는 얼마나 이른 나이에 안정된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느냐를 놓고 또 달리기 시작한다. 왜 달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른들한테 물어봐도 납득할 만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미운 네 살처럼 어떤 대답에도 왜를 반복해보지만 끝내 납득할 만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승점이 인생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인생인데 푸는 과정 없이 답만 외우라는 인생을 강요받는 자식은 과연 행복할까? 심지어 그게 정답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억지로 재수를 시키는 부모도, 억지로 재수를 막는 부모도, 네 뜻대로 하라는 부모도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매 한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에 말한 옛 직장의 선배와 뒤에 말한 지인은 자식에 대한 존중이라는 면에서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친밀감과 자식의 행복감은 부모의 사랑보다 부모의 존중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우리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속 썩인 적 없는 우리 딸이 이제 와서 속을 썩인다며 한탄하신다.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제야 행복하다. 그리고 조금 더 일찍 행복을 찾았다면 조금 더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조금은 부모님 원망을 하고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라리 우리 부모님이 나를 덜 사랑하셨으면 오히려 결과는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못대먹은 생각을 오늘도 하고 말았다.
육아전문가가 말하길, 육아란 종국적으로 자녀를 독립시키는 과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의미의 육아를 실천하는 부모가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지, 나는 거의 없다고 본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는 것보다 진자리도 마른자리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자식의 인생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니가 자식을 안 키워보니 그런 소리를 한다고 하겠지만 맞다. 내가 자식이 없어서 부모님 입장에서가 아니라 자식된 입장에서 변을 하오니, 진 자리란 진자리는 다 막아두시는 게 자식을 위하는 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