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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06. 2022

여행은 언제나 남는 장사 1

5개 외국어가 가능한 엄친딸, 바로 그게 접니다!

아하하 이런 말을 제 입으로 하다니 부끄러워서 얼굴이 다 화끈거립니다. 아무리 자기 PR 시대라지만 유치한 자랑질이라니, 제가 생각해도 꼴불견입니다. 


언어습득 능력이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쑥스러움을 많이 타고 수줍어하는 성격이라 외국어를 배우는데 아주 불리한데다 단어 암기는 죽어라고 싫어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영어보다 수학을 훨씬 좋아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게 성격에도 맞고 외워봤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영어단어 암기보다는 풀어냈다는 보람이 있는 수학문제 풀이가 훨씬 좋았습니다. 학창시절 저에게 영어는 피할 수 없는 과제요, 수학은 그나마 도피처이자 쉼터였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영어랑은 안 맞았습니다. 해야하니까 억지로 했던 것이었죠.


이랬던 제가 어떻게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까지, 외국어를 4가지나 더 배울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도 시험이나 일 때문이 아니라 순수 자의로, 심지어 사치스럽기까지 하게 취미로 말이죠. 그건 바로 여행의 힘이었습니다.


해외로 여행을 다니다 보니 내가 그렇게 싫어했던 영어가 나의 여행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해 주었습니다. 영어권 국가가 아니더라도 관광지에서 영어는 어느 정도 통하니 혼자 여행을 가더라도 길을 묻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또 현지인들과 대화를 하거나 현지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니 여행은 한층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외국어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우선 고등학교때 제2외국어로 배운 적이 있었던 독일어부터. 고등학교 졸업 후 완전히 손을 놓아 완전히 잊어버린 독일어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독일어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부에서 쓰임이 있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영어도 충분히 잘 통하는 나라이지만 최소한 몇마디 정도는 그 나라 언어로 말하고 싶었습니다. 영어가 가능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이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주면 반갑고 고마우니까요. 그런데 독일어를 조금이라도 공부한 것은 한 마디 건넬수 있는 것을 넘어 예상치 못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바로 간판과 메뉴를 읽을 수 있다는 것!

간판과 메뉴를 읽을 수 없었으면 한국에서 검색한 장소만 들리고 한국에서 검색한 맛집에서 검색해온 음식만 먹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길을 걷다 "Kunst"("예술"이라는 뜻의 독일어입니다.)가 들어간 간판이 보이면 무심코 들려 보았습니다. 레스토랑 입구의 메뉴판만 보고 들어간 집이 한국에선 소개되지 않은 숨겨짓 맛집이라 이틀 연속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맛들리니 그렇게 싫었던 외국어 공부가 신나기 시작했습니다. 항공권을 결제하면 그 나라 언어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두어달 바짝 생존언어로 배운 스페인어, 배우다 욕심이 생겨 시험까지 준비한 중국어와 일본어. 어떤 이는 지금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냐며, 차라리 그 시간과 노력으로 영어 하나만 파는 게 낫지 않냐 말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고 하죠? 비효율적이라도 자주 행복하니 그게 더 좋습니다.


지금까지 보시니 어떠신가요? 뭐야, 겨우 그 정도였어 싶으시죠? 맞습니다. 저는 언어천재로 불리는 조승연씨나 타일러씨처럼 하나 제대로 하기도 어려운 외국어를 몇 개 씩이나 유창하게 하는, 그런 능력자가 아닙니다. 그저 발 닮근 외국어가 많을 뿐이지 뭐 하나 똑부러지게 하지는 못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니 제 스스로 저를 5개 외국어가 가능한 엄친딸이라 표현했던 건 자랑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엄친딸은 실제 존재하는지 확인도 안된 그저 나 혼자 부러워했던 그런 사람이니, 내가 부러워 했던 그 엄친딸은 어느 순간 내가 되어 있었다는 의미로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허세에 죽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로 지적 허세 말이죠. 당연히 허영도 심하구요. 지적 허영말입니다. 어쩌면 그게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몇 개 국어 능통자"라 불리는 사람들을 몹시 동경했습니다.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에게 아주 뻑 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영어부터 삐걱거렸으니 "몇개 국어능통자"는 진작에 포기였죠.

다만 여행이 좋아서 그 여행을 좀더 편하고 풍요롭게 하려 한 마디, 한 마디 익힌 것이 나의 이상향이 되어가는 길이었으니 저에게 여행은 진짜 남는 장사 중에 남는 장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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