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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20. 2022

추천여행지  TOP 4

이것도 의미 없는 리스트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가끔,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 어디를 가장 추천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무 많은 곳이 떠올라 제대로 대답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곰곰이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행지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떤 곳을 추천하면 좋을까 딱 네 군데만 생각해 보았습니다.


딱 네 군데만 고르는 건 정말 어려웠습니다. 일단 모든 여행지가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와 경험을 가진 장소였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한 번쯤 해 볼 만한 경험인지,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인지도 따져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 이유로 특별히 의미가 있었던 장소, 유쾌하거나 친절한 현지인과의 만남이 좋은 기억을 증폭시킨 곳, 나의 취향을 저격한 장소 등은 제외했습니다. 그렇게 고르고 고른 Top 4는 바로.....


1. 뉴욕


대도시의 끝판왕. 이민자의 도시인만큼 "원래"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고 대신 "세상 모든 것"이 존재합니다. 휴양지나 한적한 시골길을 선호하는 여행자라면 솔깃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휴양지를 선호하는 편이지 휴양지만 고집하는 게 아니라면 뉴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술, 음악, 자연사, 건축, 맛집, 패션 등 어떤 관심사를 가지든 뉴욕이란 도시는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곳입니다.

뉴욕은 시작하려니 말이 무한정 길어질 것 같아 언젠가 뉴욕여행만 다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2. 독일


잘 모르면 딱딱한 이미지에 볼 것 없는 공업국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빛나는 서유럽과 비교해서 좀 더 현대적이라는 이미지에, 그렇기 때문에 그다지 볼거리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직도 히틀러의 나라라는 거부감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독일에는 디즈니성의 모티브가 된 노이슈반슈타인성, 하이델베르크성, 뮌헨 레지덴츠 등 동화 속에서 나온듯한 고성들과 아기자기한 중세도시, 로마 시대의 자취 등 볼거리가 무궁무진합니다. 그리고 자동차, 축구, 맥주와 관련된 현대적 볼거리까지요.

생각했던 이미지와 달리 독일 사람들은 친절한 데다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그럴 수밖에요.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축구의 나라잖아요.

  

3. 코타키나 발루


코타키나 발루에는 반딧불 투어가 있습니다.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습니다. 반딧불 투어는 해 질 녘 나루터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반딧불 서식지로 이동하게 됩니다. 이동하는 동안 해가 서서히 지는데 코타키나발루는 아름다운 석양으로도 유명합니다. 핑크와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은 다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하늘이었습니다. 하지만 석양의 아름다움은 해가 완전히 진 후에 경험하게 될 광경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해가 완전히 진 어둠 속을 어느 정도 이동하다 보면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나무들이 나타납니다. 나무에 반짝이는 불빛들은 전구가 아닙니다. 나무의 밑동부터 가지 끝까지 촘촘하게 반짝이고 있는 것은 바로 반딧불들입니다.  타고 있던 배가 반딧불 서식지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면 배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나무들은 나무를 뒤덮은 반딧불들 때문에 반짝입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하늘엔 별들이 촘촘히 박혀 있습니다. 촘촘한 별들과 나무의 반딧불들은 배가 떠 있는 물에 비칩니다. 그러면 나는 반짝이는 것들 속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별들에 둘러싸여 있던 것 같았던 그때의 환상은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지금은 그때와 같은 환상을 경험할 수 없거나 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일본 소도시(feat. 히타)


일본은 가깝지만 여행기분은 한 껏 낼 수 있는 여행지입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더라도 아기자기한 거리를 걷다 오래된 맛집에서 따뜻한 식사를 하고 온천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그런데 오사카나 유후인 같은 유명한 관광도시들은 여기가 일본인가 한국인가 싶고 도쿄, 교토는 볼거리는 많지만 관광객도 너무 많습니다.  

여러 도시를 가 본 결과 일본 여행은 소도시 여행이 진가를 드러냅니다. 후쿠오카에서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히타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물이 좋아 온천이 유명하고 삿포로 맥주공장이 있어 둘러볼 수 있습니다. 소소한 팁을 하나 드리자면 온천물이 좋은 곳엔 맥주공장이나 양조장이 있습니다. 온천도 술도 물이 좋아야 하니까요.

물의 도시라 불리는 히타는 아기자기하게 올드타운이 남아있어 서울의 북촌이나 서촌 같은 느낌입니다. 올드타운 사이사이 수로가 있어 물 흐른 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운치도 있고 기분도 좋습니다. 입소문을 타고 여행 온 한국인들이 종종 보이지만 오사카처럼 일본어가 한국어에 묻히는 정도는 아닙니다. 소도시라 대체로 조용하고 한적한데 구석구석 보물 같은 맛집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히타를 다녀온 뒤론 일본 소도시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려면 번거롭긴 해도 소도시라 도시 안에서는 도보로 충분히 여행할 수 있고 일본 소도시만의 그 감성이 참 좋습니다.


여기까지, 정말 어렵게 고른 추천 여행지였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추천드리는 곳은 각자의 인생 여행지였던 곳입니다. 뉴욕과 독일은 프랑크푸르트, 뮌헨은 두 번씩 다녀왔는데 처음 가 봤을 때뿐만 아니라 두 번째도 좋았습니다. 아니, 두 번째가 훨씬 좋았습니다. 오랫동안 여행을 쉬었다가 다시 떠난다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줬던 그때 그 여행지의 안부를 확인하러 가는 것은 어떨까 싶습니다.


솔직히 추천여행지가 다 무슨 소용인가요. 다만 새로운 정보나 편견에 대한 반증이 여행계획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지난 여행을 돌아봤습니다.


ps. 사실 No.1이 어디냐는 질문에 저는 여전히 망설임 없이 로마라고 대답합니다. 그럼에도 로마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추천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가 저의 인생여행지인데는 저만의 특별한 이유가 더해져서이고 직접 다녀온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리기도 해서입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제 마음속 일등은 아직 로마입니다! 좋다고 등 떠밀 순 없지만 다녀와서 공감해 주시는 분이 계시면 무지 반가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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