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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Sep 26. 2022

혼자 여행하려고 혼자 왔습니다만

죄송하지만 한국인이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혼자 여행이 좋아서 혼자 갑니다. 혼자 여행을 가도 알아서 사진도 찍고 알아서 밥도 잘 먹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누군가 다가와, 

"혼자세요? 한국인이죠? 잘 됐다...동행하면 되겠네."라거나, 

"혼자신가보다. 우리 서로 사진이라도 찍어주며 같이 다녀요." 등등의 말을 건네는데 솔직히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의아한 것은 혼자 다니기 싫으신 분들이 왜 혼자 출국하셨을까요? 혼자 출국했지만 동행이 필요하면 한인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얼마든지 동행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길에서 굳이 혼자임을 즐기는 사람을 방해할 필요 없이 말이죠.


해외에서 한국인을 만나면 그다지 반갑지 않습니다. 특별히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행이 필요해서 접근하는 일회성 만남에는 배려도 존중도 없습니다. 물론 그 중에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엄청 희박한 확률입니다(본인이 그런 동행을 만난 적이 있으시면 운이 좋으신 것이고, 본인이 그러한 동행이었다고 생각하신다면.....죄송하지만 본인에게 조금 관대한 편이 아니신가 싶습니다.)


최소한의 배려와 존중이 있다면 일단 타인의 의사를 묻는 것에서 시작을 해야 합니다. 동행할 생각이 있으시냐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의사를 묻는 것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비단 여행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보통", "상식", "당연"이라는 말들을 많이 사용합니다. 


항공기 내에서도 자국민들은 서로를 참 불편하게 합니다. 비상구 좌석과 구간별 맨 앞좌석은 다리를 뻗을 수 있을 정도로 자리가 넓기 때문에 장거리 여행에서 그 좌석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비상구 좌석과 구간별 맨 앞좌석은 고객 편의를 위해 넓게 만들어 놓은 게 아닙니다. 비상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승객구조에 조력해야 하며 평시에도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넓은 공간에도 불구하고 짐을 놓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넓은 자리에 짐을 못 두게 하니 본인의 좌석 밑에 짐을 두겠다며 뒷 좌석 승객에게 좌석 아래 짐을 치워달라고 합니다. 본인 좌석 아래라고 해서 거기가 본인 짐 공간이 아닙니다. 본인 좌석의 아래는 뒷좌석 승객이 발을 뻗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발을 뻗을 것인지,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거기다 짐을 둘 것인지는 뒷좌석 승객이 선택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내용은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항공기 내에서 계속 방송으로 안내가 됩니다. 외항기라면 영어가 짧아서라고 이해하겠는데 국적기를 타셔서 왜 다른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어떤 승객은 좌석 위 짐 보관함에 본인의 가방도 들어 있으니 다른 승객들은 되도록이면 착륙할 때까지 짐 보관함을 손대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니 여사님 14시간을 비행해야 하는데 14시간동안 손대지 말라구요? 그리고 여사님, 귀중품은 보관함에 두실 게 아니라 소지하셔야죠. 


언젠가 비상구 좌석에 앉았던 때가 있는데 그 때는 장거리 여행에 지친 승객들이 제 자리로 모여들었습니다. 다리를 쭉 펴고도 공간이 남자 거기 하나, 둘 모여들어 모여든 사람끼리 통성명을 하고 여행목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거리여행은 누구나 불편하고 지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배려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래도 국적기는 외항기에 비해 좌석도 쾌적하고 서비스도 좋습니다. 그러면 뭐하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 못견디는 사람이 그나마 견디는 사람에게 불편함을 주는 걸요. 


일상에서의 무례와 선넘음에 지쳐 여행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배려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 혼자 여행을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행지에서 예기치 않았던 무례를 만나게 되면 일상에서도 언제나 의문을 품었던 질문인, 10년, 20년 사귄 친구들은 여전히 서로를 어려워하고 예의를 지키는 마당에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어째서 놀라울 정도로 무례하며 스스로를 무례한 줄 모르고 본인이 필요한 바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한 번 상기하게 됩니다. 이 질문에 제 오랜 친구는 이렇게 답하였습니다. 오래된 사이임에도 여전히 어려워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니까 오랫동안 친구로 남은 것이라고. 또한 유유상종이라 비슷한 사람끼리 친한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존중과 예의는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여행 중인 한국인을 만나면 그닥 반갑지 않습니다. 출국하는, 혹은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별로 반갑지 않습니다. 다음엔 한국인이냐고 물으면 일본어나 중국어로 대답할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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