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구멍잎과 찢잎이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특징은 사람들이 몬스테라의 미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지만 사실 커다란 나무가 많은 숲속에 사는 몬스테라가 아래쪽 잎에도 햇빛이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입니다."
포토그래퍼의 식물에세이. 식물도감이라 하기엔 글과 사진들이 너무나 따스하고 포토그래퍼가 들려주는 식물이야기라 하기엔 내용이 꽤 전문적이고 지식의 집대성이 이루어진 책. 콘서트 시리즈가 유행하던 시절에 출판되었다면 식물콘서트란 제목이 붙었을 것 같다. 유행이 지나고 출판되어 식물사진관이란 제목이 붙어서 다행이다.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사진관은 왠지 따스하고 손떼 묻은 단어니까.
몬스테라의 사정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요즘들어 빈틈없어 보이려고 애썼던 지난날의 내모습들이 이불킥할 정도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킬 것을, 들키기 싫어서 바짝 긴장하고 산 건 왜 때문이었을까.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인공 한나는 문맹이란 것을 들키기 싫어 좋은 일자리를 포기하고, 없는 죄를 뒤집어 쓴다. 나는 글을 읽지 못하고 글을 쓰지 못합니다 한마디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데도 한나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커밍아웃하느니 차라리 중형을 선고받는 길을 택한다.
한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생각해보면 나의 틈을 들키기 싫어 기를 꽂고 살던 내 모습이 바로 한나의 모습이었다.
식물이 아니라서 모르긴 해도 잎은 식물의 얼굴과도 같을텐데 빛을 받기 위해 제 얼굴에 과감히 구멍을 뚫은 몬스테라는 오히려 그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나는 메워지지 않는 틈을 가리겠다고 정작 내 실속은 차리지 못했는데. 전지적 시점에서 그 모습은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
"틈이 있는 곳에 빛이 들어온다"
누군가 남긴 명언이다. 그놈에 틈이 죽어도 싫어서 이 말이 전혀 와닿지 않았었는데, 요즘들어 빈틈없어 보이려고 날카롭고 뻣뻣하고 척척 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면서 이 말이 마음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