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만들지 말라는 말이 직장인의 십계명 중 하나인 대한민국(지금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전까지 직장인에게 적 만들지 말라는 말은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 정도의 계명이었다.)에서, 그 중에서도 아주 전형적인고 보수적인 직장에서, 나름 승승장구하며 달려온 사람이 던진 이 말은 너무나 참신한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순두부 멘탈을 가진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내내 큰 힘을 주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좋은 사람'과 '일 잘하는 사람'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면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나의 가치관인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적이 생기는데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의견대립이 없을 수 없고 성향차이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무조건 어느 한쪽에 맞춰주거나 양보하는 게 꼭 좋은 일도 아니다. 오히려 대립과 갈등이 정-반-합의 과정에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일은 일일 뿐이라 해도 누군가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일이 편할 수는 없다. 특히 순두부 멘탈에겐 도통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다. 마음 약해지고 내려놓고 싶어질 때, 뭐 내 회사도 아닌데 뭐하러 미움받으며 이렇게까지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 옛 상사의 말을 떠올린다.
착하다 소리 들으려 출근한 건 아니잖아.
그렇게 오늘도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편치 않은 마음 다독거리며 나를 닮은 순두부찌개를 끓여본다.
기름을 두르고 파와 간마늘을 볶다가 고춧가루를 같이 넣고 약불에 볶아준다. 이렇게 기름에 재료를 볶아서 찌개나 국을 끓일때면 나는 주로 냄비 대신 궁중팬을 사용한다. 눌러붙지 않고 덜 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인덕션 불 줄이는 걸 깜빡하는 바람에 궁중팬에 볶았는데도 탔다. ㅠㅠ
타지 않게 고춧가루를 잘 볶아서 고추기름을 내 주어야 한다.
고추기름을 충분히 내주었으면 물을 넣고 끓인다. 물양은 라면 하나 끓이는 양보다 적게. 국그릇으로 한그릇 정도 되게 넣어준다. 다시마 한조각 넣어주면 감칠 맛이 나지만 없으면 생략해도 된다. 국간장으로 적당히 간을 해주고 순두부, 버섯, 바지락살을 넣어준다. 바지락살은 물에 충분히 헹구고 찬물에 담궜다가 사용한다. 마트에서 파는 바지락살은 해감이 된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물에 담궜다 사용하는 것으로.
국물맛을 보니 뭔가 부족한 맛이다. 그래서 된장 1티스푼, 고추장 아주 약간을 넣어봤다. 좀 나은데 그래도 아직은 부족하다. 이번엔 신김치를 잘게 썰어넣어 봤다.
오~ 엄지 척이다. 마지막으로 달걀 하나 톡.
순두부는 간이 베여도 말캉말캉한 순두부다.
그러니 사회생활 연차가 쌓인데도 편안해 지는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찌개에 물든 순두부처럼 겉으로 보기에 무난무난해 보이는 날 쯤은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