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은 언제 ‘일’이 되나요?

집안일의 품격

by 황금 엄마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거대한 집안일을 마주하게 됐다. 그동안 아무것도 모르면서 ‘집안일이 별거 있나.’같이 안일한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집안일 정말 별거 있었다.


37년을 한국에서 살면서도 음식 한번 변변하게 해보지 않았던 나는 당장 아이를 먹이는 것부터 나랑 남편이 먹는 것까지 난관에 부딪혔다. 그래도 아이는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여야 하니깐, 당장에 나 편하자고 내가 먹는 음식을 대충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몸에 살과 함께 만성염증을 달고 살게 됐다.


빨래는 세탁기, 건조기가 하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고, 바닥 청소는 로봇청소기가 하니, 집안일 하기 엄청 편해졌다며 남편이 나에게 속시끄러운 소리를 했다. 하기야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시절, 나도 그런 마음을 조금은 품어봤었다.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냐며.


옷을 분류하고, 세탁기에 세재를 넣고, 다 되면 빼서 건조대에 널고, 마르면 빨래를 곱게 개서 각자의 자리로 돌려보내기까지 이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줄 알았다면, 내가 감히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었을까?


설거지는 애벌빨래를 해야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있고, 식기세척기 금지 그릇은 손수 씻어내야 하며, 로봇청소기 관리는 오로지 주부의 몫이고, 거기다 애한테 들어가는 품까지.


육아 자체도 진짜 뼛속까지 힘든데, 집안일까지 하려니 몸이 남아나질 않았다. 살찌고 염증이 덕지 덕지 솟아있는 천근만큼 무거운 몸으로 아이를 안고 왔다갔다, 집안일을 한다고 왔다갔다, 거기에 남편 뒤치다꺼리까지.


여기에 자녀를 길러내야 하고, 재테크를 잘해야 하며, 어떤 이는 직장도 다니면서 돈도 벌어야 하고, 양쪽 부모님도 잘 모셔야 하고, 엄마들 모임도 잘 해야 하는….

이쯤에서 한국의 집안일을 좀 생각해 보고자한다.

끝을 알 수 없는 무한한 반복성, 거대하고 거대한 양과 범위, 게다가 한푼의 돈도 손에 쥘 수 없는 이 일. 때로는 시부모님, 친정부모님 혹 남편의 잔소리를 견뎌야 하는 이 일. 또 집에서 노는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 능력없는 여자가 집안일을 한다는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야 하는 일, 회사나 다른 직장은 모두 아프면 병가나 휴가를 낼 수 있는데도 당사자가 아파도 제대로 휴식조차 할 수 없는 이 일.


23년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전업주부가 가정에서 수행하는 무급 가사노동을 유급노동으로 환산하면 연간 약 3,500만원~4,500만원 상당이라고 한다. 월평균 약 300만원~380만원 사이가 된다. 지금은 더 올랐을 것이다.


기본 가사 도우미역할에, 요리사, 청소전문가, 세탁소, 보육교사나 가정교사, 간병인, 회계사, 운전기사, 때로는 심리 상담가의 역할까지. 이렇게까지 다양한 역할을 해야 하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으면 여자가 어떻게 병을 안 얻을 수가 있고, 철이 안 들수가 있겠는가.


나는 출산 후부터 이런 집안일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출산해서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하지만, 언젠가는 밖에서 돈버는 일을 해서 멋있게 삶을 살겠다며, 스스로 집안일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내 마음속에서부터 집안일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하기도 싫고 마지못해 하니 일의 효율이나 완성도도 떨어졌다.


그러다가 최재천 교수님의 ‘공부‘라는 책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 책에 보면 최재천 교수님께서 결혼을 하면서 설거지를 담당하셨는데, 설거지를 하면서도 항상 그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설거지를 하니 설거지가 잘 되지 않았다고 하셨다. 어느날부터는 생각을 고쳐먹고 설거지는 ’내‘일이라고 생각하고 설거지를 하게 되니, 설거지가 훨씬 잘 되고 깔끔하게 완성되었다는 에피소드였다.


생각해 보면, 나는 원해서 결혼했고 아이도 원해서 내가 두 명이나 나았다. 그러므로 집안을 관리하고 일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일정 부분은 내 일이고 내 몫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을 남편을 포함해서 남이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고 꿈꿨다.


그러나, 내 집과 관련된 내 집안일은 일의 힘듦을 떠나서 내 일이다. 내가 제대로 해내야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의미있게 어우러지고 잘 살아가는 곳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최재천 교수님처럼 ‘집안일이 내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집안일의 품격을 높이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얼마전에 지인을 만났는데, “브런치를 카페에서 즐기는 대부분은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며, 이러한 문화는 사치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이런 말들을 하는 30대, 40대를 가끔 만난다. 나이든 세대는 그렇다고 해도 젊은층에서도 집안일은 아직 ‘일‘로 승격되지 못한 채로 남아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헌신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인을 향해서 “한국에서는 집에서 노는 여자 한 명도 없습니다.모두 아침부터 저녁까지 365일 휴가없는 일을 합니다.” 라고 한 마디 대꾸해주었다.

이제 주부로서 집안일의 품격은 내가 먼저 높이면서 살고 싶은 바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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