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인슈타인만큼 똑똑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서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그중에도 오래 기억에 남는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의 시간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난 목욕탕을 좋아하지 않는다. 때 미는 것도 싫었고, 탕에 오래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싫었고, 숨도 못쉬는 사우나에서 아무런 장비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도 내가 엄마를 따라서 목욕탕에 갔던 단 하나의 이유는 그 숨막히는 시간들을 견뎌내고 얻을 수 있는 차갑고 달디 단 바나나우유 때문이었다.
너무나도 더웠고 목욕탕 안에는 습기가 가득했고 때밀이 수건의 아픔을 이겨내야만 바나나 우유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우유는 어린 내가 그 모든 것을 이겨내는 보상으로 충분히 맛있었다. 더움과 추움의 공존과 전환. 극과 극의 차이에서 오는 쾌감. 그리고 치명적인 달콤함.
나와 달리 엄마는 목욕탕을 좋아했다. 나는 목욕탕을 1시간도 견뎌내지 못했는데, 엄마는 3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내곤 했다. 내가 집에 가자고 졸라대면 엄마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냐면서 마지못해 탕에서 나와 정리를 하셨다.
엄마의 목요탕 루틴은 이랬다. 온탕에서 20분, 사우나에서 30분, 그리고 냉탕에서 10분, 다시 나와서 30분 동안 때를 밀고 온탕에서 20분, 사우나에서 30분, 그리고 냉탕에서 10분을 채우고 나서야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한 다음에 목욕탕에서 나왔다.
나는 그런 엄마를 늘 경이로움으로 바라봤다.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해도 3시간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어떻게 목욕탕이라는 숨막히는 공간에서 3시간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목욕탕에 온도별로 3개의 온탕이 있고, 냉탕이 있고, 냉탕에서는 폭포같은 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고, 사우나가 있고, 샤워시설이 따로 있고 목욕탕 밖에는 앉을 수 있는 평상이 있다고 해도 어떻게 그 공간에서 3시간을 즐기면서 있을 수 있는지 어린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와 나는 샤워를 하고 온탕에 들어갔다가 때를 밀고 샤워를 하고 옷을 다 입고 바나나우유를 먹어도 1시간밖에 보내지 못했는데 말이다. 특히 내가 가장 이해가 안 됐던 것은 숨막히는 사우나에서 30분을 보내는 엄마였다. 사우나에서 나온 엄마의 몸은 한참을 뜨끈뜨끈했는데, 그곳에서 숨을 쉬면서 몇십분을 보내는 엄마도 놀라웠고 그것을 묵묵히 견뎌내는 엄마의 몸도 놀라웠다.
출산하고 아이를 돌보면서 가끔 엄마와 목욕탕을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를 낳고 나니, 엄마와 살았던 수많은 시간들이 자주 생각 났다. 나는 엄마가 가정에서 엄마로서 자리를 지키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줄 알았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어보니 잘하든 못하든 엄마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렸던 그 당시의 엄마는 목욕탕에서 온탕과 사우나, 냉탕을 오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집은 가난했기때문에 배부르게 밥을 먹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엄마가 목욕탕을 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 쉽지 않은 목욕탕이라는 취미를 엄마는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아마도 엄마가 그 당시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여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묵은때를 벗겨내면서 엄마는 가난을 벗겨내는 상상을 했을 지도 모른다. 온탕에서 몸을 담그면서 양육의 긴장과 가난의 긴장의 풀어냈을 지도. 사우나에서 숨막히는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잘 살아낼 수 있다.‘를 무한 반복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냉탕의 물줄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다시 삶을 살아낼 자신감을 얻었을지도.
38년 동안 한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39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때 처음 알았다. 숨을 쉴 수는 있지만 숨통이 틔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내 나름 숨통의 기회를 만들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럴 때는 나보다 더 힘든 시기를 나름 꿋꿋하게 버티고 우리 삼남매를 키워낸 엄마의 삶을 숨통으로 삼았다. 엄마처럼 목욕탕에서 3시간을 버틸 수는 없었으나, 엄마의 삶을 잠시라도 생각하면, 바나나우유를 마신 것처럼 달콤하고 시원해졌다.
그러면서 시간은 또 빠르게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