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일제 일을 포기합니다.

놀이와 스마트폰

by 황금 엄마

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고, 일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아이를 낳고서도 내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일을 하는 것은 순전히 엄마의 의지에 달려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첫째를 낳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으면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2년 터울로 둘째를 낳으면서 나의 일이 점점 멀어져갔다.



먼저,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같은 공공교육기관에 보낸다고 해도 하원 후에 돌봐 줄 사람이 없었다. 물론, 조부모님이나 돌봄 선생님의 도움 혹은 공공기관에 좀 오래 맡겨 놓을 수도 있었지만 나같은 경우는 몇 가지 제약이 있었다. 조부모님들은 너무 먼 곳에 사시거나 일을 하셨고, 내가 만혼이어서 부모님이 나이가 너무 많았다. 둘째가 굉장히 예민하고 짜증이 많아서 돌봄 선생님을 뒀을 경우, 얼마나 돌봄을 친절하게 받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엄마인 나도 이렇게 양육하면서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데, 남이 아이를 맡았을 경우 그분이 어떤 영향력을 줄지 예측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가장 큰 조력자여야 할 남편도 비협조적이었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하고 집에는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남편의 지론 때문에 나는 파트 타임같은 일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남편이 도와줘도 일을 하기 쉽지 않은데 협조를 해주지 않으니 도무지 일을 해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이를 너무 오래 공공 기간에 놔두는 건 내가 용기가 안 났다. 어른도 밖에서 12시간 넘게 있으면 지치고 힘든데, 아이가 아침 8시에 나가서, 오후 6시쯤 들어온다면 어린 아이에게 이건 너무 힘든 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가 일을 할 때 가장 곤란할 때가 아이가 아플 때다. 일하는 엄마들은 대부분은 아이를 공공기관에 보내야 하기에 공공기관에서 도는 질병에 쉽게 노출된다. 여름이면 수족구, 겨울이면 독감, 혹은 때때로 오는 식중독에 장염, 등 연례 행사처럼 질병이 찾아온다. 아이가 한 명이면 일주일 정도 휴가 내서 엄마 아빠 두 명이서 그 아이를 맡으면 되지만, 아이가 2명이면 시간차로 질병에 걸리는 아이들 때문에 거의 한 달을 병치레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엄마와 아빠까지 같이 걸려버리면, 병치레로 다들 골골대다가 계절이 바뀌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직장일을 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쓸 수 있는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요즘에는 단축근로제도 있고, 상황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이를 위해서 온전히 간호하고 돌보는 일은 일하는 엄마에게는 여전히 힘든 일이다. 주변에서도 일하는 엄마들이 아픈 아이를 전전긍긍해하며 조부모님들에게 돌아가면서 도움을 청하는 일도 많이 봤다.

그러나 내가 전일제 일을 포기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앞서 이야기한 일들은 맞벌이 가정의 보편적인 어려움이고 부모 외에 좋은 조력자를 만나면 많은 부분 해소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두 가지의 이유의 해결책을 나는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에 전일제 일을 마음속에 접었다.

그네타는 아이.jpg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아이

첫째는 ‘놀이’다. 나의 어린 시절 1980년대만 해도 집 밖에 나가면 친구들이 있었다. 네 살에 나가도 동네 언니 오빠들과 같이 놀 수 있었고 동네 친구들이 었었다. 주변 엄마들도 아이들에게 관심도 많고 친절해서 아이들이 위험하면 돌봐주고 도움을 주곤 했다. 골목 골목 볼 수 있는 것도 많았고 놀거리도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놀 수 있는 공간도 한정적이고 아이들도 많이 없다. 아이들이 없으니 엄마들도 당연히 없다. 학원이나 학습지를 하는 아이들이 많아지면서 매일 매일 놀이터에 나올 수 있는 아이들도 줄었다. 내가 아이들을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바깥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줄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유아기의 아이들은 바깥활동을 해야 한다. 바깥에서 심장이 뛰게 달리고 놀고 심심해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나도 한 때 둘째아이와의 육아 때문에 첫째 아이를 학원으로 돌릴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5살이었던 첫째 아이는 일주일에 2~3번씩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을 감당하지 못했다. 나는 5세에 무언가 학습을 위해서 혹은 운동을 위해서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 한 번 나가면 기본 2시간 이상을 놀았다. 날씨가 덥거나 춥거나 상관없이 놀았다. 40대에 접어든 나도 체력적으로 한계가 왔다. 이런 돌봄을 나이 드신 조부모나 대부분이 60대인 돌볼 선생님이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지론은 그랬다. ‘놀리면 확실하게 놀린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심심하면 작은 연못에 가서 돌 던지면서 놀고 할 게 없으면 풀이라도 뜯고 놀았다. 그냥 프로그램이나 계획 없이 끊임없이 노는 것. 남편도 가끔 잘 못 따라주는 내 지론을 조부모님이나 돌봄 선생님들이 따라 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어릴 때만이라도 일을 포기하자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어릴 때만이라도 일을 포기하자고 했던 내 결심은 곧 무너졌다. 앞으로 향후 20년은 내가 전일제 일은 하지 못하겠구나라는 확신이 든 물건, 바로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미디어’다.

나도 텔레비전 세대다. 물론 비디오테이프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접하게 됐지만 텔레비전은 일찍 접했다. 아침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많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봤다. 그래도 내가 어린 시절에는 미디어에 대해서 선택적 노출이 가능했다. 나는 장시간 나가 놀았기 때문에 텔레비전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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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스마트폰’이 생긴 것이다. 그런데 스마트폰만 생긴 게 아니고 거기에 앱도 생기고 넷플릭스같은 프로그램공급처도 생겼다. 아이들은 장소, 시간에 상관없이 넷플릭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키즈 프로그램을 몇 시간씩 볼 수 있고 유투브에서 장난감 언박싱을 몇 시간씩 볼 수 있다. 누군가의 통제나 조절이 없다면 아이들은 이를 조절하지 못한다. 유아기 아이들의 뇌는 조절 능력이 한창 자라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조절 못한다. 그런데, 유아기 아이들만 조절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동기나 청소년기 아이들도 조절 못하고 성인도 조절 못한다. 요즘에는 노인분들의 유튜브 중독 현상도 심각하다.

아이들의 뇌 발달에 관한 정신과 의사에 강의를 들었는데, 아이들이 미디어에 중독되는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이 바로 아빠와 할머니라고 한다. 제한 없이, 기분 따라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내가 밤에 가끔 외출을 하면 남편은 으레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노출시켰다. 그래서 아이들은 내가 밤에 외출하면 미디어 보는 날이라는 규칙을 점점 체득하는 중이다. 하물며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이들을 중독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아무리 헌신적인 조부모님들이라고 해도 아이들 미디어 관리는 잘되지 않는다. 엄마도 힘든 이 조절 능력, 그리고 조절 교육이 조부모님이 혹은 돌봄 선생님이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조절은 유아기뿐만이 아니라 청소년기에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절대로 혼자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스마트폰을 조절하면서 아이들이 학업을 잘 병행하는 아이, 그 아이가 대단한 것이지, 대다수 조절 못하는 아이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미디어 조절은 무조건 사람이나 시스템이 개입해야 한다. 사람들이 함께 연대해서 조절하던지 시스템으로 막아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병폐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여전히 이러한 대응에 소극적이므로 이 문제가 가정 내의 문제로 전가되었다. 미국의 빌게이츠나 버럭 오바마 대통령같은 유명인들이 자신들의 자녀 스마트폰 문제를 스스로 관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향후 20년을 전일제 일, 특히 밤에 하는 일을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다.


‘일하는 엄마’는 참 힘들다. 하지만 ‘일을 포기하는 엄마’도 힘들다. 자신이 가진 커리어를 한순간에 내려놓고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일을 포기하는 엄마로 남기로 했다. 그것이 내 자녀를 위한 나의 현재 최종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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