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여자다'
엄마는 30세에 태에 문이 닫혔다. 20대에 아이 셋을 출산하고 엄마의 출산은 쭉 멈췄다. 엄마는 그 이후 근 20년을 육아에 전념했다. 90년대의 대부분의 시대가 그러하듯, 아빠는 육아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는 없는 살림에 아이들을 키워냈다.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한 시대. 돌봄과 사랑보다는 생존이 더 앞선 시대.
이 시대의 젊은 엄마는 여자의 삶을 졸업했다. 화장에 관심 없는 엄마, 명품백에 눈도 못 돌리는 엄마, 그리고 다이어트도 할 수 없는 엄마. 엄마는 생존의 시대에 어울리는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냈다. 비겁하게 아빠에게 책임을 묻지도 않았고, 내일 먹을 것이 걱정인 집에서 도망도 가지 않았다. 학교의 촌지 요구에도, 반장이었던 자식들의 뒷바라지에도, 학비 걱정에도 엄마는 늘 우리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그 당시에 어린 나도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40대에 육아를 시작했다. 육아를 시작할 당시, 난 번듯한 아파트에서 첫째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좋은 직장은 아니었지만 가정에 책임을 다했다. 나는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일도 하지 않았으며 오롯이 아이만 돌봤다. 그래도 그 당시 내 입에서 늘 “죽네 사네.” 소리가 나왔다.
나는 엄마의 삶을 살면서 30대까지 살았던 여자의 삶을 그리워했다. 새처럼 자유로웠던 그 시절을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그때. 돈, 친구, 연애, 여행… 내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했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지금의 육아 현실을 부정했다. 엄마는 어떻게 나보다 어릴 때 우리를 키워냈을까?
“엄마, 애 키우는 거 나이 들어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어떻게 25살에 결혼해서 애를 키워냈어?”
“젊으니깐 그냥 된 거지. 너도 젊었으면, 더 잘했지.”
엄마는 엄마로서 잘 살아낸 삶을 젊음의 덕으로 돌렸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여자를 졸업할 각오로 임한 엄마니깐 이렇게 잘해낸 것을….’
몇 년 전에 엄마의 컴퓨터 배경 화면을 본 적이 있다. 엄마의 컴퓨터 배경화면은 60대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이었다.
“엄마, 원래 이런 배경 화면은 손자 손녀 사진이나 가족사진으로 해놓지 않아?”
“엄마는 그런 거 싫어. 엄마 사진 예쁘고 좋은데 뭐.”
엄마는 60대에 우리를 다 결혼시키고 엄마의 인생을 졸업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랑스러운 여자의 인생을 재입학해서 살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보고 싶은 드라마를 실컷 보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
난 그런 엄마가 좋다. 자식한테 집착하지도 않고 손자 손녀 때문에 안달하지도 않고, 그 아이들을 잘 키워내라고 닦달하지도 않는다. 엄마가 제일 많이 하는 소리는 “그냥 잘 살면 돼.”이다.
지금 나는 30대에 엄마처럼 ‘엄마의 삶’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도 ‘엄마’의 삶을 졸업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그리고 여자의 삶을 다시 입학할 때, 나도 엄마처럼 환하게 웃는 60대 내 사진을 컴퓨터 배경 화면으로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