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되지 않는 취소 공상

by 황금 엄마

클릭 몇 번으로 손에 쥐어 보지도 못한 50만원이 날아갔다. 괌으로 가는 항공권을 그렇게 내 손으로 취소했다.

첫째 딸아이의 유치원 졸업을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했다. 하루 종일 수영장에만 있어도 질리지 않는 두 딸을 위해서 수영만 실컷 할 수 있는 괌으로 가자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때마침 괌숙박권도 있었기에 남편도 흔쾌히 수락했다.

12월쯤 계획하고 1월에 항공권과 숙박을 예약했다. 이제 괌으로 온 가족이 날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계획에 자질이 생겼다.

바로 우리 부부와 둘째 딸의 관계가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것이다.

원래부터 기질도 예민하고 성격도 강했던 둘째는 그래도 5세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편안함도 잠깐, 겨울이 시작되면서, 둘째의 예민함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둘째는 짜증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짜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유치원을 다녀오면, 떼부터 쓰기 시작했다. 대화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댔다. 특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씩씩대면서 분을 참지 못했다.

둘째는 원래 순하고 편한 기질이 아니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그런 둘째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해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문제는 둘째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참는 건 자신 있었다. 내 인내심은 오랜 훈련의 결과였다. 무언간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참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나는 잘 참아내니깐 인생에서 절반은 승리하였노라고 생각했다. 발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고도 6개월을 끙 소리 한 번 안 내고 참아냈던 나였다.

그런데 둘째의 악소리에, 시도때도 없이 부리는 떼에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12개월 말이 트이고부터 한 번도 내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던 둘째의 대꾸에 4년도 지나지 않아 나는 ‘도대체 인내심이 뭐죠?’ 라고 되묻는 인내심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처럼 되어 버렸다.

나는 “팬티 안 입을거야. 이 옷 안 입을거야”라는 둘째의 매일 반복되는, 그래서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예민함에도 바로 바로 폭발했다. 둘째 앞에서 옷을 던지고 둘째 팔을 마구 잡아 끌고 ‘사랑의 매’라는 요상한 매를 만들어서 엉덩이도 때렸다. 감정은 컨트롤을 잃고 훈육은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이런 나의 불안정한 배에 남편이 올라타기 시작했다. 내가 불안정해도 중심을 지키며 둘째를 사랑으로만 대해주던 남편이었는데, 둘째의 예민한 기질에 원래 예민했던 남편의 인내심도 바닥이 난 것 같았다.

둘째의 짜증에 남편의 짜증이 더해지니 시너지가 엄청났다. 집은 조용한 날이 없어졌고, 남편도 둘째와 마찬가지로 비명을 질렀다. 집은 침몰하는 배처럼 위태위태해졌다.

이런 와중에 밤 비행기를 타고 괌에 갔다가 새벽 비행기를 타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감당하기가 너무 버거웠다. 아직 어리기만 한 두 딸을 데리고 불안정한 우리 부부가 같이 저 멀리 남태평양으로 날아가기에는 까마득해 보였다. 괌 항공권은 그렇게 우리 곁에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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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날릴 것을 알면서도 항공권을 취소하다니….’

내 인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사건 이후 며칠 동안 나는 홀로 취소 공상을 했다. 가끔 엄마들 사이에 앉아서도 이런 공상을 할 때가 있다. 만약에 결혼이 취소된다면, 남편과의 만남이 취소된다면, 그리고 아이를 출산하는 사건 자체가 취소된다면, 그랬다면 난 어떤 인생을 살게 되었을까?

많은 엄마는 말한다. 연애나 결혼이 취소되면 내 인생은 좀 더 나아졌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이와 관련된 취소를 이야기하면 다들 주저한다.

‘만약 내 인생에서 아이를 낳은 사건이 취소된다면 난 행복해졌을까?’




솔직히 난 요즘 내가 신기하다. 둘째를 양육하는 것은 내 인생의 최대의 어려움일 정도로 힘든 일에 속한다. 이번에 괌 여행을 취소하면서 돈을 날린 일이 그 양육의 일부분일 정도로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신이 허락한다고 해도 난 그렇게 다루기 힘든 둘째를 낳은 사건을 취소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렇게 공상을 좋아하는 내가, ‘만약에’ 라는 말을 붙여가며 가정법을 즐겨하는 내가 둘째의 존재를 취소하는 공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가정을 하는 것 자체가 두렵다. 둘째는 내 인생에서 그 정도로 소중한 존재다. 그리고 그런 존재를 인정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난 신기할 따름이다.

항공권을 취소하고 ‘금쪽같은 내새끼’ 방송을 틀었다. 오은영 박사처럼 포스를 풍기며 아이를 훈육할 수 없을지라도, 아이디어를 얻어서 내 방식대로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다.

미래에도 둘째와 관련된 많은 일들이 취소될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그렇지만 난 괜찮다. 둘째를 향한 내 생각이 변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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