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쫄았던 거니?’

-연애에 쫄보였던 20대의 나에게-

by 황금 엄마

안녕,

조금은 쉬고 있니? 지금 이 순간에도 넌 세상과 열렬히 싸우고 있겠지? 넌 그 시절 한시도 쉬지 않고 널 만든 신과 세상을 미워했었잖아.

40대가 된 나는 이제 조금 알겠어. 그때의 네가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쿨한 척했던 젊음의 비겁함과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썼던 수많은 노력과 어설펐던 너의 방어들.

많은 것들이 아쉽고 안타까웠지만, 제일 많이 아프게 생각나는 건 연애에 소극적이고 사랑에 한껏 겁을 내던 네 모습이야.

image.png 마음껏 사랑하길...

‘가난’이라는 환경에 갇히고, ‘남자는 별로다.’라는 선입견에 갇히고, 누구도 나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비관론에 갇혀서 20대를 허우적대며 살아냈던 너. 가벼운 만남이 진정한 관계라고 착각하면서. 그래서 여자 친구가 있는 남자에게도 “영화 보자, 밥 먹자.”며 가볍게 말을 건넬 수 있었고, 그렇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끈을 몇 개씩 부여잡고 데이트를 돌려 막기 하면서 너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었지.

사람을 남자, 여자로 구분하기 전에 네 맘대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규정짓고 좋은 사람이라면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호감을 표현하고 나쁜 사람이라면, 가볍게 밀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지. 거기부터 네가 ‘남자’를 혹은 ‘남자 친구’의 존재를 오해하게 됐던 건 아닐까.


물론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알아. 초등학교 1학년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추행을 여러 번 당했고, 원하지 않는 상대가 진지한 이야기 없이 ‘썸’이라는 의미 불분명한 단어를 들이대며 스킨십도 강요당했지. 몸과 정신이 건강한 ‘남자’를 많이 만나지 못했던 너의 인생도 이해해. 그런 상황에서 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도록 넌 ‘남자’라는 존재를 무시하고 모르는 척 해왔잖아.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음을 난 알아.

하지만, 가난할수록, 젊을수록, 그리고 잘 모를수록 연애를 더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연애 속에서 보이는 ‘사랑과 관계’를 더 많이 고민해 보길 바라. ‘사랑’에는 ‘로맨스’라는 이름만 있지 않아. ‘사랑’에는 열정, 에너지, 기쁨 아름다움, 즐거움, 쾌락 같은 좋은 감정만 있지 않음을 경험했으면 좋겠어. 남자와 하는 ‘사랑’은 오래 참고, 희생해야 하고, 그 사람을 나와 동일시하며 같이 아파하고, 동정하고, 안쓰러워하고, 찌질하고, 비겁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어.


넌 남자와의 관계는 가벼워야 한다며 사랑을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잖아.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진지하게 연애하며 사랑에 흠뻑 빠져 젊음의 시기를 생동감 있게 살아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는 널.


40대의 나는 아직도 가끔 생각해. 네가 만약 그때 건강한 남자들을 만나 충분히 사랑할 수 있었다면, 연애 내내 그리고 결혼 초기 남편을 무시하고 마구 대하기보다는 조금 더 넓게 품어주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넘치는 사랑으로 너의 아이들에게 흘려보내주지 않았을까.


세상과 싸우기만 하지 말고 내 주변에서 가장 괜찮은 남자를 찾아봐. 연애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얕보지 말고 1년이라도 인생을 한번 걸어봐. 그러면 너는 나의 삶의 질을 변화시킬 수 있어. 결혼과 출산, 육아라는 과정 내내 씀바귀만 씹어먹고사는 것이 아닌, 축적되어 있는 그 엄청난 사랑으로 당근쯤은 씹어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깐, 20대의 나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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