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꿈꾼다, 사람과 연결되는 따스한 공간을
북카페를 운영하던 시절,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메뉴를 기획하는 일이 정말 고통스러웠다.
나는 처음부터 카페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책이 좋아서, 책을 매개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서 시작했던 공간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커피 원가 계산에 머리를 싸매고
한겨울 신메뉴 개발에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을 보며
‘이게 내가 꿈꾸던 모습이 맞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됐다.
결국 나는 북카페 문을 닫았고,
다시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책방도 아니고, 카페도 아닌, 블렌딩 티를 만들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혹시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갑자기 바뀌나요?’라고 묻고 싶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나도 이 변화가 믿기지 않았다.
차(tea)를 개발하고, 원재료를 고르고, 향을 조합하는 일이라니.
카페에서 하루에도 수십 잔의 커피를 내리던 내가 이젠 차(tea)를 연구하고 있다는 게 어쩐지 낯설었다.
하지만 곱씹어보니, 모든 건 북카페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사람들이 어떤 메뉴에 반응하는지,
어떤 분위기의 공간에 오래 머무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던 그 시간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를 사람들의 취향을 읽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블렌딩 티 사업으로 이어졌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는 수원이다.
그중에서도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은
어릴 적부터 늘 내 곁에 있던, 매일같이 걷고 바라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수원 화성의 아름다움을 일상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원의 사계절.
봄의 창룡문, 여름의 화홍문, 가을의 화서문, 겨울의 방화수류정.
그 풍경에서 받은 영감을 찻잎과 여러 가지 향으로 담아냈다.
블렌딩 티 전문 개발자들과 협업을 하면서
그렇게 세상에 하나뿐인 블렌딩 티가 탄생했다.
지금 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블렌딩 티를 판매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차 한 잔이
누군가의 하루에 잔잔한 위로가 되어준다는 사실이 참 기쁘다.
처음엔 그저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찻잎을 고르고, 향을 고르고, 티 이름을 짓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북카페 시절엔 너무 바빠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게 뭔 지조차 잊고 있었던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리고 요즘 나는 다시 꿈을 꾼다.
언젠가 다시 따뜻한 공간을 열고 싶다.
북카페를 운영하던 그 시절처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책을 읽고, 차를 마시고,
서로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낼 수 있는 그런 공간.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책과 커피만 있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커뮤니티.
지역에서 창업한 사람들끼리 고충도 나누고, 협업도 할 수 있는
작지만 단단한 네트워크의 거점.
그리고 나는 그 공간에서 내가 걸어온 실패와 시행착오를
누군가에게 두려움 없는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돌아보면, 북카페를 그만두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카페 홍보 콘텐츠를 만들던 실력으로
사업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북카페 시절의 경험을 녹여낸 사업계획서로
창업 지원 사업에도 합격했다.
그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결국에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되어주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나는 오늘도 한 손엔 찻잔을,
다른 한 손엔 책을 들고, 다시 사장님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 망하긴 했지만, 그 덕분에 저는 저를 더 잘 알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