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책방은 열지 않았지만
북카페를 오픈하고 몇 달 되지 않았을 때였다.
책방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의 스터디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신청했다.
사실 처음엔 ‘스터디’라기보다, 나처럼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스터디 단톡방에서 알게 된 한 분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괜찮으시면 시간 되실 때 매장에 직접 찾아가도 될까요?”
메시지를 받았을 때 나는 창고에서 냉장고를 정리하던 중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처음 받아보는 종류의 요청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때 같았으면 거절했을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메시지 너머로 전해지는 용기의 무게가 느껴져서
그날은 쉽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화요일 오전은 좀 한가하니, 그때 방문해 보시라고 회신을 드렸다.
화요일 아침.
메시지를 보낸 분이 조심스레 매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날의 공기에도, 그의 걸음에도,
메시지에서 느껴졌던 조심스러움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자리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나누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책방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한데,
그 마음의 방향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책이 좋아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건지,
아니면 책방이라는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걸 운영하고 싶은 건지…
아직 헷갈려요.”
사실 나는 처음엔 그 말이 무슨 차이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고민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책방 운영의 현실적인 단면들을 하나하나 꺼내놓았다.
실질적인 북카페의 매출 구조,
서가 관리를 소홀히 했을 때의 문제점,
매일 반복되는 청소와 손님 응대,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운영자'라는 역할의 책임까지.
그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아…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 고민되네요.
그래도, 더 궁금해졌어요.”
몇 주 후, 우리는 다시 북카페 안쪽 작은 공간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며칠간 고민해 본 끝에 지금 당장은 책방을 운영할 자신은 없지만,
그림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과 책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선뜻 그의 기획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혼자서 북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정작 책을 읽고 소개하는 시간보다
카페 주문, 청소, 재고 관리에 시간을 더 많이 쓰게 되었고,
그래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큰 위로를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함께 회원 모집 공고문을 쓰고, 블로그에 홍보 글을 올리고,
프로그램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사은품으로 나눠줄 책갈피도 함께 골랐다.
확실히 준비할 게 많았지만 처음 기획을 잘해두면 이후에는 내용을 조금씩 바꾸며
앞으로 꾸준히 프로그램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끝나버렸다.
내가 북카페 운영을 정리하게 되면서
우리는 겨우 몇 번의 수업만 진행하고 프로그램을 종료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은 진짜 책방을 차렸나요?”
"아뇨, 아직은 아니에요.
하지만 지금도 그때처럼 그림책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그럼 결국 아무것도 이뤄진 건 없네요?”
"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사업이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뚝딱 시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요."
“그래서 그 인연, 지금도 이어지고 있나요?”
"네, 이어지고 있어요.
아직도 가끔 만나고,
서로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사이예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카페를 운영하면서 상처를 받은 일도 많았고, 가슴이 철렁하는 순간도 정말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지금 이 망한 북카페 사장님의 이야기를 이렇게 쓰고 있는 이유는 그 모든 순간을 견디게 해 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
“망하긴 했지만, 그리운 날들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