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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고가 바닥나고 나서야 생각한 것들

사장님이라면 숫자를 지켜야 한다.

by 늠름

북카페를 시작하기 전, 나는 솔직히 자신이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 즐거웠다.

"좋아하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 책 이야기를 나누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로망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로망을 지키기 위해 몇 달은 버텼다.

하지만, 나는 곧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다.


한 달 월세 80만 원.

이번달 매출 160만 원.


"응? 잠깐만. 그럼…?"


그당시 내가 판매하던 아메리카노 2,500원, 라떼 3,500원.

책을 한 권 팔면 유통 마진은 10~15%.

분명 열심히 커피를 팔았고, 책을 팔았는데 이렇게 매출이 작다고?


나는 카페 사장님이 아니라, 그냥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거였다.

북카페를 시작하기 전에도 힘들거라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잔고가 바닥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가 직접 커피를 만들고, 내가 직접 책을 팔아야만 매출이 생기는 구조.

이건 절대 안정적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매출에 일희일비할 수만은 없었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 번째 시도 : 공간 대관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다. "책방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잖아.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기도 한데?"

그래서 나는 공간 대여를 시작했다.


북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독사 모임을 하거나, 강연을 하거나, 원데이 클래스를 열 수 있도록 공간을 빌려주기로 했다. 처음엔 조금 불안했다.


"이게 될까?"
"북카페 공간을 빌려가려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조용한 공간을 찾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문의를 주기 시작했다.

나는 손님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 이용 매뉴얼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손님들이 스스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니, 나는 하루 종일 매장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으로, "이렇게 버틸 수도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 공간 이용 방법 (화장실 비밀번호, 와이파이 비밀번호, 블루투스 스피커 사용법 등)

- 음료 이용 안내 (커피는 콜드브루 원액으로, 에이드는 수제청을 미리 소분해두었다)

- 퇴실 후 정리 방법


이걸 정리해놓으니 스스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고 나는 하루 종일 매장을 지키지 않아도 외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도 : 북카페 멤버십 서비스


"손님들이 북카페에 오는 이유가 뭘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책을 읽기 위해서? 아니면… 그냥 이 공간에 앉아 있기 위해서?

이 생각이 들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하루 이용권 10,000원 - 공유 서재의 책 자유롭게 이용 (원하는 음료 한잔 무료 제공)


그런데, 이 서비스는 예상과 다르게 완전히 실패했다.

- 판매용 새책과 공유 서재가 분리되지 않았던 것.
- 판매용 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 손님들.
- 훼손된 책으로 손해 발생.


어느 날은, 일부러 멀리서 차를 끌고 북카페 멤버십을 이용하러 온 손님이 있었다. 판매용 새 책을 꺼내어 읽게 되면 상품 가치가 떨어져 공유 서재로 옮겨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날 방문한 손님이 그랬다. 판매용 책을 꺼내어 읽다가 공유 서재로 옮겨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서로 난처한 상황이 발생했고, 이후는 볼 수가 없었다. "이건 동네 북카페에서는 맞지 않는 서비스였구나."


세 번째 시도 : 문구류 판매

책을 파는 게 어렵다면, 책과 어울리는 무언가를 팔면 되지 않을까?

- 볼펜, 다이어리, 포스트잇, 스티커.

알록달록한 볼펜, 한 달에 한 권씩 쓰는 다이어리, 귀여운 일러스트가 그려진 포스트잇, 감성적인 글귀가 적힌 스티커들.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문구류를 구경하는 손님들이 많았고, 생각보다 꽤 많이 잘 팔렸다.

책은 1만 5천 원~2만 원대가 넘어가면 판매하기 어려웠지만, 1만 원이 넘는 다이어리는 쉽게 팔렸다.

- 책보다 문구류를 더 궁금해하는 손님들.
- 30~40%의 높은 마진율.
- 커피 한 잔 값으로 부담 없이 구매하는 작은 소품들.


손님들이 "새로운 문구류가 뭐 들어왔어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북카페가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취향이 모이는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이라면, 숫자를 지켜야 한다."

나는 결국 공간 대관, 문구류 판매, 북카페 멤버십(실패했지만 경험은 쌓았다) 이 세 가지 방법을 통해 매출을 보완했다.


하지만, 이것들을 더 일찍 고민했더라면 더 오래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좋아하는 공간을 유지하려면, 잔고부터 지켜야 한다. 통장 잔고가 바닥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공간이 아무리 예뻐도,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사장이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한숨을 쉬기 시작한다면 그 공간은 오래갈 수 없다. 잔고가 바닥나기 전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혹시 당신도, 언젠가 작은 카페나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이 말을 꼭 남기고 싶다.

- "좋아하는 공간을 유지하려면, 사업으로 생각해야 한다."

- "공간이 아니라, 비즈니스로 접근해야 한다."

"- 사장이 되고 싶다면, 통장을 확인하는 습관부터 들여라."


통장 잔고를 애써 외면하다 보면, 언젠가는 내 꿈을 먼저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더 빨리 오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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