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마지막 날에

by 서서희


시월의 마지막 날이 가기 전에,

시월이 가기 전에...

서둘러 글을 씁니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라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10월 31일로 이 글의 날짜가 설정되어야

내 기록이, 내 기억이 의미 있을 것 같은 생각에 말입니다.


하지만

남은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이 글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내용을 갖추고

매끈한 문장으로 다듬어질 지는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벼락치기 앞에는 저는 늘 안절부절 못하여

안절부절하다가 끝나버리곤 했으니까요.


(퇴근하고 집에 와서

왜 안하던 냉장고 대청소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

시간을 허비한 것만 같아 자책해보기도 합니다.)


오늘 친구가 보내준 어느 성악가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다가

이어지는 어느 가수의 '잊혀진 계절'을 들으며

댓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다

그 음악 앞에 머무는 많은 사람들의 심경이 내 심경과 같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다 사람들은

시월의 마지막 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분투하며, 견디며, 아무렇지 않은 척 살다가

시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내게 소중했던 기억들, 소중했던 사람들, 소중했던 시간들을

내 마음 어느 구석에 있던 서랍 속에서 뒤적여 꺼내서는

하염없이 펼쳐보고 있었습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는

막대과자를 준비할 필요도, 화려한 포장의 초콜릿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것을 준비하다가 마음을 놓칠 염려도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노래 한 두 곡이면 되는 날,

당장 어제 일도 잊는 하찮은 기억력이지만

노래의 힘은 오랜 기억들을 불러 모읍니다.

기억의 켜켜이에 접혀 있던 것들을 다림질하여 일으킵니다.


문득 시월의 마지막은

'시험 종료를 10분 전에 미리 알려주는 종'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 감독관은 답안지를 다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두르라는 친절한 안내 멘트를 덧붙입니다.

울리는 즉시 필기구를 놓아야 하는 종료 종, 답을 마킹할 경우 모두 0점 처리되는 단호한 종 앞에

아직 기회가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같습니다.


비록 많은 날들이, 달들이, 계절이 스쳐 지나갔고

지는 해의 붉은 그라데이션에, 바스락대는 낙엽에

가슴이 서눌해지기 쉽상이지만


존재만으로도 삶의 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다고,

너의 장기기억장치를 열어 삶의 정답을 찾아 보라고,

두 달의 시간이 아직 남았으니 다시 힘을 내라고...

신호를 보내줍니다.



쓰다 보니

나의 시월의 마지막날은 '괜찮아'입니다.

아프고, 슬프고, 부끄럽고, 그리운 과거에도

두렵고 막막한 지금에도

연약한 내가 어떻게든 디뎌야 할 미래에도

'괜찮아'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의 속삭임 같은.







덧붙임


-나:

10월 31일의 기록을 위해 두서 없는 글을 발행하고 후회할까,

그냥 서랍 속에 저장만 한 것을 후회할까.


-시월의 마지막 날:

둘 다 괜찮아. 넌 오늘 냉장고 대청소를 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