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투명한 화이트

by 윤슬



대학원 시절, 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화이트를 덧칠하고 덧칠하면, 결국 그 아래 블루가 배어 나오지. 너는 한없이 투명한 화이트 같은 사람이야.”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다 알지 못했다. 그저 칭찬처럼 들리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제 속에 무엇이 숨어 있다는 건가 싶어 혼란스럽기도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저는 그 말을 곱씹으며 다시 떠올린다.


우리는 스스로를 감추려고 덧칠할 때가 있다. 밝은 얼굴로,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그 뒤에는 저마다의 색이 있다. 내 속에 고요히 스며 있는 블루, 그것이 아무리 화이트로 덮여도 어느 순간 불쑥 배어 나온다. 진짜 내 얼굴은 뭘까. 살다 보면 주위의 기대에 맞춰 살며 내 마음은 감추고 살아갈 때도 있다.


어느 순간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떠밀려서 위태위태 하루를 지탱하며 억지로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무시하고 냉대하며 시간을 보낼 때 내안의 블루는 더 진해진다.

블루를 지우려 다시 블루를 덧칠하면, 색은 점점 짙어진다. 연한 블루가 다크 블루가 되듯, 감정도 억누르면 할수록 더 깊은 그늘을 만든다.


차라리 처음의 연한 빛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더 맑고 투명한 색으로 머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우리는 끝없이 덧칠하며 살아간다. 사회가 원하는 모습, 관계 속에서의 역할, 혹은 내가 되고 싶은 이상적인 얼굴.


하지만 아무리 겹겹이 칠한다 해도 결국 본래의 색은 드러난다. 억지로 가려진 진짜 색은 더 짙어져서 우리 삶의 바탕이 된다.


화이트와 블루, 그리고 다크 블루의 이야기는 제게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것은 내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고, 사람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 되기도 한다. 화사한 미소 뒤에 가려진 그 사람의 빛깔, 말로 다하지 못한 사연과 깊이를 떠올리게 한다.


는 요즘 가끔 제 안의 블루를 그저 바라보려 한다. 지우려 하지 않고, 감추려 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다크 블루가 되기 전에 고유의 빛깔을 인정하고 어루만지려 한다. 덧칠을 멈출 때, 비로소 색은 투명해진다.


결국 교수님의 말은 이렇게 제게 다가온다.

한없이 투명한 화이트란, 아무 색도 없는 공허함이 아니라, 본래의 색을 가리지 않고 비춰낼 수 있는 투명함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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