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바람의 밤

잠시 머물러도 괜찮은, 다정함 밤의 이야기

by 윤슬

서문


지친 하루가 끝난 밤,

아무 말 없이 곁을 내어주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따뜻할까.

세상을 떠돌다 잠시 멈춘 바람,

그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나무 이야기다.

이 글은 서로에게 작은 쉼이 되어준 두 존재의 고요한 밤을 닮았다.


본문


아주 오래전, 숲이 세상보다 더 크고

별빛이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웠던 시절이 있었어.


그 숲 한가운데, 작지만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나무 한그루 가 있었지.

누구에게나 인사를 건네는 다정함을 가진,

조용하지만 따뜻한 나무였어.


봄이면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틀고,

여름이면 사람들은 그 그늘 아래 쉬었지.


가을이면 다람쥐가 열매를 모아두고,

겨울이면 눈이 내려 나무를 포근히 덮어주었어.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조용히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


어느 날, 하루 종일 세상을 떠돌던 바람이

몹시 지친 얼굴로 숲에 들어왔어.


잎사귀를 스치며 이리저리 헤매던 바람은

마침내 그 나무 앞에 멈춰 섰지.


“나무야,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어.

온 산을 돌고, 들판을 지나며

사람들의 한숨과 먼지를 잔뜩 안고 왔거든.

잠시만 네 곁에 쉬어도 될까?”


나무는 부드럽게 가지를 흔들며 속삭였어.

“물론, 언제든 괜찮아. 나는 늘 여기 있으니까.”


바람은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나무 가지 사이로 몸을 누였어.


나뭇잎들이 작은 손처럼 바람을 감싸며 말했지.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처음엔 조심스레 머무르던 바람도

점점 깊이 잠들었고,

별빛은 나무 위에 내려앉아

달빛은 그 둘을 부드럽게 감쌌어.


새벽녘, 바람이 살짝 눈을 떴을 때

나무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어.

“이제 좀 나아졌어?”


바람은 부끄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

“응, 네 품은 참 따뜻하구나.

늘 세상을 떠돌며 스쳐 지나가기만 했는데,

이렇게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이렇게나 고마운 일인 줄 몰랐어.”


나무는 말했어.

“누군가에게 머무는 건, 나에게도 선물이야.

너 덕분에 내 잎들이 더 반짝였거든.”


그날 이후 바람은 종종 숲을 찾아왔어.

세상을 떠돌다 지칠 때면 나무 곁에 머물며

자신의 하루를 이야기했지.


그리고 나무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조용히, 그러나 온 마음으로 들어주었어.


별빛이 번져가는 밤이면

바람은 나뭇잎을 살짝 흔들며 속삭였어.

“오늘은 좋은 꿈 꾸게 해 줄게.”

그러면 나무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지.

“고마워, 바람아.

네 꿈에도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 존재는 서로의 밤이 되어

세상의 고요 속에서 함께 숨을 쉬었어.


그리고 지금도 숲 속을 스치는 바람 속에서

그 고요한 밤의 이야기가 속삭이고 있어.


“괜찮아, 잠시 쉬어가도 돼.

세상은 널 기다려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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