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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혐오사회 / 카롤린 엠케 지음 / 다산초당]

by 십이월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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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인간에게는 자기와 다르거나 낯선 사람에 대한 무의식적 방어심리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무조건 혐오나 증오로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경우 그것은 일종의 거부로서 표현되며, 대개 사회적 관습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가 관용을 너무 지나치게 내세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종교나 겉모습이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좀처럼 만족에 다다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아예 만족할 줄 모르는 자들은 아닌가 하는 불편한 심기들이 사회 곳곳에서 점점 더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p.22 대화에 대한 전통적인 기대가 모두 뒤집히고 상호관계의 기준도 완전히 역전된 것 같다. 상대방에게 아주 단순하고도 당연한 예의를 표하는 것도 부끄러워할 일이고,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가능한 한 거칠고 난폭하고 편견 가득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자랑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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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증오와 폭력을 고찰할 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도 함께 고찰해야 한다. 이 말은 증오와 폭력이 번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증오나 폭력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다양한 원천을 고찰한다는 것은, 증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잘못된 통념에 맞서는 일이다. 그 통념은 증오가 마치 존경심처럼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진짜 감정이라고 우긴다.


p.185 늘 배워나가는 사회는 실제로 모든 사람이 똑같은 기회를 얻고 똑같이 보호받고 있는지, 금기나 이데올로기적 쉬볼레트들로 된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장벽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점검해보는 데서 그 특징을 드러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률과 그 적용뿐 아니라, 건축학적 또는 미디어적 입장들도 고찰해야 한다. 그것은 자기비판적이고 반어적인 호기심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p.197 증오와 폭력을 무턱대고 거부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전략과 은유와 이미지를 가지고 증오를 만들어내며 어디로 그 방향을 돌리는지 관찰하면, 어느 지점을 치고 들어가야 그 이야기의 틀 자체를 전복할 수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카롤린 엠케의 『혐오사회』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혐오가 결코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와 담론 속에서 학습되고 확산되는 것임을 차분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드러낸다.


특히 ‘증오가 진짜 감정이라는 통념’을 비판하는 대목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감정은 개인의 순수한 내부에서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직되고 정당화되며 반복적으로 주입될 때 힘을 갖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또한 엠케는 군중 속 익명성과 디지털 공간에서의 여과 없는 언어가 어떻게 타인을 ‘다른 존재’로 만든 뒤 배제하고 공격하게 만드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한다. 혐오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조롱과 비난, 편견들이 서로 연결되며 커지는 과정이라는 지적이 오늘의 현실과 겹쳐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책을 읽고 나면, 혐오를 멈추게 하는 일 역시 ‘자연스럽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군가의 존엄을 지키는 말하기, 잘못된 통념에 의문을 던지는 태도, 그리고 익명성 뒤에 숨지 않으려는 선택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작은 언어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가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2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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