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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이월의 봄 Aug 11. 2023

독서노트를 펼치고 다시 만나는 문장들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을 읽고...



8월 8일은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님의  5주기였다.  독서노트에는 2021년 4월에 읽었던 <밤이 선생이다>의 문장들이 모여 있다. 흔들리는 것들로부터 마음을 지키고 싶어 읽었다는 메모와 함께. 기록이 나의 과거를 끌어와 현재 앞에 놓아준다. 


책 속에는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고 쓰여 있었다. <밤이 선생이다>를 읽으며, 그 봄엔 딱 이만큼. 내가 모은 문장들만큼 나의 현재가 두터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봄날, 내가 모았던 문장들을 두 해가 지난여름에 다시 꺼내본다.

두터워졌을까? 물어보니, 왠지 얼굴이 붉어진다.





p.12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p.88 봄날은 허망하게 가지 않는다. “바람에 머물 수 없던” 아름다운 것들은 조금 늦어지더라도 반드시 찾아오라고 말하면서 간다.


p.175 일상에 묻혀 살아온 사람이 거창한 지식을 갖기는 어렵다. 까다롭고 복잡한 이런 체계에 친숙해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가 확보하고 있는 지식이 반드시 적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주부가 여성주의에 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지만, 자기 친정이 어떻게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구별하여 키웠는지는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없다. 인간의 심성이니 무의식이니 하는 것에 대해 특별히 공부한 적은 없지만 사흘 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남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그는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중략)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다 사소한 것들이다. 사소하다는 것은 세상의 큰 목소리들과 엄밀한 이론체계들이 미처 알지 못했거나 감안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은 바로 그 때문에 독창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


p.191 마음속에 쌓인 기억이 없고 사물들 속에도 쌓아둔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날마다 세상을 처음 사는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오직 앞이 있을 뿐 뒤가 없다. 인간은 재물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도 저축한다. 그날의 기억밖에 없는 삶은 그날 벌어 그날 먹는 삶보다 더 슬프다.


p.192 권태롭다는 것은 삶이 그 의미의 줄기를 얻지 못해 사물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감수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p.233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p.260 진실보다 먼저 만들어진 말들은 진실보다 시나리오를 더 사랑한다.


- <밤이 선생이다, 황현산 저, 난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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