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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이월의 봄 Aug 27. 2023

아주 깊고 <고요한 우연>

청소년 소설 [고요한 우연]을 읽고

 

<고요한 우연, 김수빈 장편소설, 문학동네>, 제13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청소년기에 성인들을 위한 소설 혹은 '고등학생이면 꼭 알아야~'로 시작되는 이런 류의 책들을 많이 봤던 것 같다. 서른이 넘고, 한 아이의(지금의 첫째 아이) 엄마가 된 이후, 오히려 청소년 소설 또는 성장 소설을 읽으며 나의 지난 시간을 쓸어보기도 하고 다가올 우리 아이의 그 시간을 미리 더듬어 보기도 한다.


<고요한 우연>은 줄곧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 공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한 발짝 더 가까워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가오기를 바라지만, 밀어내고 싶은. 다가가고 싶지만, 주저하게 되는 여린 마음 사이를 오간다. 내가 생각하는 상대와의 거리와 상대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의 거리가 늘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정도, 사랑도 조심스럽다. 특히, 나에 대한 자신이 없을 때. 더욱 그렇다. (본인만 자신의 가치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밤은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의 간격을 가늠해 보느라 쉬이 잠들지 못하기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다른 공간의 궤도에서 갖게 된 비밀 때문에 방향을 잃고 마음이 온종일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책 속의 주인공들은 그러는 사이에 어딘가 한 뼘씩 자라고 있다. 또 어딘가 가까워지고 있다. 내가 나에게. 혹은 내가 타인에게.   


가볍지 않은 이야기가 무겁지 않게 흘러가는, 달의 앞면과 뒷면을 함께 바라보는 듯한 책을 만났다. 지나친 관심, 무관심, 방관, 조용한 조력자, 배려, 교실 내 폭력, 용기 없음, 시기, 질투, 우정 등 모두 다 열거할 수 없는 학교와 아이들을 둘러싼 또 다른 이름들이 우주의 수많은 별처럼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누군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나의 세계를 침범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


결국,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고요의 바다에 발자국을 남기고, 마음의 진동을 일으켜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파동은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지나가야만 무언가가 남는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나의 경험이 그것을 감당해 낸 사람만을 바꾸듯이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바람의 사춘기였던 나와 지금의 나를 불러오고 또 밀어내며 읽었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복직을 하게 된다면, 학교에서 만나는 우리 아이들과 꼭 함께 읽고 싶다.

아이들에게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똑똑똑” “띵동!” “카톡!” “뚜벅뚜벅” “슬금슬금” “첨벙” “또도독” “반짝”


고요한 우연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이 닿아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이 이야기 속에는 어딘가 너희들과 닮은 많은 친구들이 등장한다고. (수현, 고요, 정후, 우연, 지아... 책 속 주인공들의 이름은 미리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독후감 안 써도 좋다고. 선생님도 단지, 이런 것들이 떠올랐을 뿐이라고.


“똑똑똑” “띵동!” “카톡!” “뚜벅뚜벅” “슬금슬금” “첨벙” “또도독” “반짝”




<고요한 우연, 김수빈 장편소설, 문학동네>


p.85
▪️ 네가 다치지 않으려면, 네 의지와 상관없이 너한테 흘러들어 온 것들을 흘려보내는 게 맞는지도 몰라. ▪️ 고이지 않고, 넘치지 않게. 너는 바다잖. ▫️ 아주 차갑고 무심한 바지. ▪️ 아주 깊고 고요한 바다이기도 하고.


p.87
▫️ 나는 엄청 재밌는데. 네가. ▪️ 나한텐 누구한테 들려줄만한 이야기가 없어. 정말 하나. ▫️ 그건 재미없는 게 아니라 평화로운 거야. 좋은 거지.


p.113
 고요는 혼자라서 너무 외롭지만, 더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 있는 미움은 견딜 수 있어도 이유 없는 미움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영영 혼자일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던 '순간'들을 잠시 멈춰 세웠던, <고요한 우연> 속의 문장들을 함께 나눈다.


'책은 함께 읽는 것'.  

이 말을 믿기에, 누군가는 나의 마음을 붙잡았던 어느 구절들을 함께 읽고, 또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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