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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킬 홍은화 Nov 14. 2019

포노 사피엔스는 찬성하지만  [포노 사피엔스]는 반대한

스마트폰을 아이(어르신)에게 쥐어 주기?

[포노 사피엔스](최재붕, 쌤앤 파커스)가 100쇄를 넘겼다.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스마트폰 사용의 규제보다 권장을 강력히 설파하는데 디지털 전자책(e-book)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의 종이 출판물이 100쇄를 찍은 것이다. 이들의 구매자 층은 누구인가? 실제 데이터를 통해 통계를 내지 않아도 이 책의 논리에 적용해보자면 스마트폰 사용정도 레벨 5이하, 밀레니얼세대 미만 즉 30대 이상이 될 터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은 스마트폰 중독에 노출되지 않은 세대이며 이제 막 기성세대로 진입하거나 이미 기성세대이자 현재 정부에 정당한 세금을 내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세대다. 지금 30대 이상의 사람들이 맨 처음 스마트폰-단순 핸드폰이 아닌 온라인 어플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언제인가? 적어도 2000년도 이전에 태어난 이들은 대게 중학교 입학을 하면서 입학선물로 접했을 것이다. 썰이 아니라 스마트폰 기술이 그즈음 안정화되었고 이전에는 전화, 이메일, 단순 스케줄 관리나 게임 정도가 가능한 스마트하지 못한 핸드폰이었다. 스마트폰 중독의 두 번째 관문이 되는 페이스북이 2004년에 설립되었고 첫 번째 관문이 되는 유튜브는 2005년에 설립되었다. 100쇄가 되도록 책을 사서 읽는 독자들 중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시시 때때로 시간을 투자하는 이는 과연 몇 명이 될까? 그러므로 더 엄밀히 말하면 태어나서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된 2005년 이후 출생자들은 저자의 말처럼 포노 사피엔스가 되어야만 하는가? 그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 줘야 하는가?


-가시화되지 않는 부작용

[포노 사피엔스]의 저자는 스마트폰의 부작용이 두려워 스마트폰을 규제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스마트폰 중독을 게임중독에 비유해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도 한다. 밝은 미래를 꿈꾸는 나 역시 진심으로 그러기를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심각한 발발하지 않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식의 논리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구더기를 퇴치할 방법을 모른다면 장은 담근 수고마저 잃게 만들도록 망쳐진다. 구더기를 걷어내고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도록 꼼꼼하게 소금을 뿌리고 김을 덮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구더기가 번식하게 두면 장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스마트폰의 경우는 어떠한가. 놀랍게도 아직 구더기조차 무엇인지 모르는 지경이다. 저자는 단순하게 게임중독과 스마트폰 중독을 비교하는 오류를 범한다. 게임중독처럼 스마트폰 중독은 다 한 때이고 극복할 수 있다고. 마치 저자는 누구라도 그 중독을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너무나도 쉽게 기술했지만 이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을 경우에나 가능하다. 올바른 유아기(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추후 에세이를 통해)를 거쳤고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사회환경이라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나 역시 학부 때 식음을 전폐하고  잠도 안 자고 게임에 빠져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식을 위해 몸 바쳤던 부모님의 고된 노동의 희생을 눈으로 보았고 어느 정도의 훈육이 있었으며 게임 없이 직장생활을 해야 하는 환경에 던져졌기에 자연스레 게임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 사용은 다른 차원의 유희다. 내가 초등학교 방과 후 특기적성에서 컴퓨터를 강의할 때 부모들이 가장 많이 의뢰한 상담이 “아이가 집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게 해도 될까요?”였다. 물론 나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는 어느 정도 허용을 해도 된다고 했다. “아이가 게임을 하기 위해서 게임 설치하는 경로도 알아야 하고 파일명 확장자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고, 컴퓨터 처리 과정도 컴퓨터 자격증 준비할 때 이해도가 높아져요”라고 답해주었을 정도다. 나 역시 PC방에서 담배가 허용되던 시절에 아들을 키웠으므로 담배냄새 맡게 하기 싫어서 집에 고사양의 컴퓨터를 설치해주고, 15세 이상 게임이라 내 주민번호로 게임사이트를 가입해주고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들은 그 게임의 최고 레벨자가 되었지만 프로게이머는 되지 않았고 게임중독자도 아니다.

하지만 PC 게임과 스마트폰은 다르다. 게임을 질릴 때까지 하고 중독도 되었다가 빠져나오라고 PC를 줄 수는 있을지언정, 스마트폰을 질릴 때까지 하고 중독도 되었다고 빠져나오라고 스마트폰을 쥐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가정교육과 사회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 게임중독자들은 자신들이 낳은 신생아가 울다 지치도록, 굶어서 아사 상태가 되도록 내버려 두고 게임을 한다.

우리의 가정환경은 좋으니 스마트폰을 주어도 좋은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스마트폰에는 게임뿐 아니라, 방송(음식 먹기, 여행, 뷰티 등등), 소셜 네트워크, 만화, 소설, 쇼핑 등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어플들이 존재한다. 게임은 최고 레벨자가 있지만 어플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어느 포노 사피엔스의 하루를 들여다보자. 아침에 눈을 뜬 후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간밤이나 이른 아침에 온 다양한 채팅창의(카톡만 있는 게 아니다) 톡들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그날(요일별)의 웹툰과 웹소설, 유튜브 영상을 확인하고 포털 사이트 실검들을 확인한다. 물론 여기에 몇 가지는 제외했다. 지금 까지 나열한 것은 아침 한 번이 아니라 잠들 때까지 무한반복되는 사안이다. 블루투스로 음악을 켜서 간밤 멜론 차트 곡들을 플레이하거나 게임 쇼핑 등등의 어플들은 무한반복에서 제외했다.   

책에서는 포노 사피엔스들이 모두 장을 담글 수 있는 것처럼 스마트폰을 쥐어주면 모두 중독에 빠지지 않거나 중독에 빠져도 쉽게 극복하리라 예측하지만 정작 부작용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스마트폰 소셜 네트워크와 유튜브가 가져온 청소년들의 우울증과 분노, 폭력성향, 상대적 박탈감등을 간과하고 창조적 유희(호모 루덴스)로서의 환상으로 안내한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환각적 유희의 위험성을 차치한 채.

오래전 책에 빠진 활자 중독자들은 끝내 책을 내는 작가가 되기도 하고, 게임 중독자들은 프로 게이머가 되기도 했다. 스마트폰 중독자가 스마트폰 주역이 된다? 안이하며 구태의연한 발상이다(스티브 잡스 역시 자녀들에게 컴퓨터와 스마트폰 규제를 엄격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IT 선두주자들의 실리콘 밸리 직원들 생활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의 가정에서 스마트폰 규제가 엄격하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문명이 옮겨간 후 아노미 현상은 비교적 그 기간이 짧았다. 교통사고의 피해는 확실하게 가시적이었으므로. 교통법규를 만들고 교통문화를 생활화하고 운전면허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운전이 허용되었다.

스마트폰의 위험성은 가시적이지 않다. 구더기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언제 발현할지 예측도 힘들다. TV 세대의 리모컨(리모트 컨트롤러)은 가정의 경제권을 쥔 자 혹은 실세(?!)자가 컨트롤했다. 아노미 현상을 거쳐 가정에서 자정작용으로 시청시간과 시청 공간 정하기, 아이들과 함께 TV 를 보며 이야기 나누기 등의 규칙이 생겼다. 그러나 저자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라는 것은 아무런 교육 없이 시동이 켜진 자동차를 주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미래의 주역이 되라고, 국가의 고속성장을 위해, 아이의 성공을 위해 스마트폰을 쥐어주라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누구를, 무엇을 위한 수익창출이고 경제 성장이고 인생 성공인가.


물론 나 역시 유아기와 초등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나 패드를 통해 제한적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거나 부모와 함께 어플을 사용하기 등은 아무 때나 해도 좋겠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것은, 극단적으로는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법과 예절교육을 이수한 후 주도록 해야 한다는 쪽이다. 사실 베이비붐세대(50대이상)에게도 이수시간을 거쳐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쪽이다(어르신들에게 오는 중국어가 쓰인 유튜브 영상을 받는 일은 고역에 가깝다. 그것이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어르신들은 인지하지 못한다). 지금의 10대 후반에서 20대까지는 그나마 온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구더기를 걷어낸 쪽이다. 가정교육과 스마트폰 사용 규제가 잔존하는 사회로 인해(EBS에서 3년 전에 수능 만점자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용했나?라는 질문을 했다. 한 학생은 고3 올라가기 전에 아버지가 최신형 스마트폰을 사주셔서 당황했다고 한다. 스스로 서랍에 넣고 수능 볼 때까지 안 꺼냈다고 한다). 이들은 TV처럼 스마트폰 사용에 대한 어느 정도의 두려움, 위험성을 무의식에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a.k.a 선진국일수록 저소득층 TV 시청률과 비만율은 높다. 저소득층에서는 값이 싸고 질이 안 좋은 인스턴트 음식과 TV 유희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비만을 유도하는 콜레스테롤 섭취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 스마트폰은 TV보다 휴대가 간편하며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환각적 유희들이 있다. 스마트폰을 쥐어 주기 전에 더 맹렬하고 치열하게 부작용을 파헤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야 한다. TV 시청 제한에 찬성하면서 스마트폰 규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모순이다. 스마트폰을 쥐어준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채널을 지닌(지금도 전 세계에서 유튜브 채널이 생겨난다) 리모컨을 쥐어주는 것과 같다. 경제 활동이 없는 이들에게 유희를 주라는 것과 같다. 가치관 정립이 안되었거나 스마트폰 부작용을 염두하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스마트폰은 뇌 비만을 유도하는 유해한 정보들도 수없이 많다. 이 책은 선진국/후진국, 저소독층/고소득증에 관계없이 성공을 꿈꾸는 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유혹으로 안내한다.


[포노 사피엔스]를 읽는 주독자층은 현재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세대이며,  자신들의 자녀 혹은 손주들의 성공을 꿈꾸는 세대일 것이다. 그 간절함은 [포노 사피엔스] 100쇄로 전해졌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피아노 배운다고 모두가 작곡가 되지 않으며,  코딩 배운다고 모두가 프로그래머 되지 않는다. 스마트폰은 삶의 편리성을 도모하는 손쉬운 도구일 뿐이다. 필요할 때 쓰면 되는 것이지 무조건적 사용으로 유희의 중독에 노출될 필요는 없다. 그것을 규제하고 교육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시급한 문제다.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것보다 더. 공장에서 장을 담글 때는 무균시설과 방부제 처리를 통해 해충으로부터 보호하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은 무방비 상태다.


모든 식물에는 독이 있지만 선인들은 독을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내 끝내 약이 되는 영양분을 섭취했다. 스마트폰 역시 스마트한 부분들은 두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많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포노 사피엔스에는 찬성하는 쪽이다. 하지만 [포노 사피엔스]에는 반대한다.


(부모의 게임중독으로 인한 신생아 사망/ 선진국일수록 저소득층 TV 시청률과 비만율이 높다_에 관한 뉴스는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쉽게 검색 가능.)


포노 사피엔스 : 네이버 이미지검색               


- 책을 읽고나서 보면 좋을 영화 :  데이빗 핀쳐 <소셜 네트워크>  

- 이 글이 반대를 위한 반대처럼 느껴진다면:  시드니 폴락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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