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
「나의 해방일지」는 제 삶과 생각들을 기록하는 곳입니다. 끊임없는 도전과 성취, 실패의 경험들을 진실되게 담아내고자 해요. 현재 저는 자유롭고 평안한 삶 속에서 기초를 견고히 하는데 힘쓰며, 창조적인 일들을 해내고 있고, 앞으로 더 잘 될 것입니다.
바람대로 이루어진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더욱 잘 될 운명입니다.'
#외로움
인간은 한낱 갈대에 불과한 것,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
파스칼의 '팡세'
직장 생활할 때의 일이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인데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유부남 000 차장이 회식 후 대리기사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는 길이라며, 톡을 보내왔다.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듯하더니... 뜬금없이.
"나 너무 외롭다..."는 글자가 떴다.
늦은 시간에 안부 연락을 한 것도 의아했는데 마지막 한 문장이 그 의아함에 불을 확 지폈다. '이 놈이 어디서 개수작이지?'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지만, 이해관계에 얽혀있으니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불쾌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한마디 보냈다.
"차장님~~~ 앞에 대리기사님도 외로우실 거예요.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다고 하던데요. 파이팅!"
그 후로 그는 오래오래 연락이 없었다. 술 깨고 난 뒤 이불 킥이라도 몇 차례 했길 바란다.
만약, 상황이나 대상이 달랐다면 나의 대답도 달랐을 것이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처럼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뛰노는 다섯 살 꼬마 아이부터 매사 호방하게 구는 김 부장도 종종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맞닥뜨린다. 그것은 옛 것에 대한 그리움, 사랑에 대한 갈증, 글귀나 노래 가사에서 들린 쓸쓸함 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존재감을 잃었을 때도 외로움을 느낀다.
시카고 대학의 카시오포 교수팀의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라고 하였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관계 속에서 음식을 나눠 먹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아져 행복감으로 연결되고, 반면 소외되는 상황에서는 생명에 위협이 느껴져 괴로움이나 외로움으로 발현된다고 하였다.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생존확률이 높아지고, 그것이 행복감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도 외로움의 본질을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라고 했다. 우리는 매일같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자신을 전부 드러내는 것은 자칫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래서 군중 속의 고독이라 하지 않던가.
어린 왕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사막에서는 조금 외롭구나."
뱀이 대답했다.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신이 준 본연의 속성이자 숙명 같은 존재이다. 외로움은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외로운 감정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의 삶은 수렁 속으로 깊이 빠져 허우적거리게 된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외로움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여기에서 사람들은 종종 실수한다. 사람으로 채워질 수 있겠지.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겠지...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나 또 생채기를 내고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간다. 마치 눈덩이처럼...
외로움(loneliness)은 사전적 의미로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으로 정의되어 있다. 이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 단어로 '고독(solitude)'이 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두 단어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고독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라면 외로움은 소통이 단절된 상태이다. 외로움은 친구가 없거나 이야기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행한 감정이다. 혼자 있는 것을 즐기며 평온한 것은 고독이고, 혼자 있을 수 없는 것,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 않는 상태는 외로움이다. 고독은 자발적 상태이며 긍정적인 요소가 많고, 외로움은 비자발적인 상태로 부정적이다.
우리는 외로움 끝에 고독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첫째,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외부의 목표나 자극, 긍정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외로움은 부정적인 경험을 불러오기 때문에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렵다. 헝가리의 심리학자이자 '몰입(flow)'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외로움 처방법으로 몰입을 제시했다. 혼자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외로움 대신 고독을 즐기게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성취감과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태도가 반복된다면 자존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렇게 고독을 즐기는 법을 배워야 외로움으로부터 삶이 망가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둘째, 외로움에 대해서, 나의 처지에 대해서 지나치게 깊이 생각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수록 우울감을 느낀다. 파스칼이 묘사한 당시의 왕들도 자기 생각을 하게 되면 불행해 지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도록 신하들이 노상 온갖 종류의 쾌락을 마련해주었다고 한다. 나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 전에 몸을 움직이자. 오랜 친구를 만나고, 설렘이 있는 장소를 가고, 좋은 책과 음악을 듣는 것이다. 사소한 행복거리를 찾아 감사일기를 적어보고, 즐거운 일은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고 도전하는 것에 에너지를 써야 한다.
셋째,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무의식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훨씬 더 빠르게 받아들인다. 부정적 무의식의 포로가 되면 세상을 모두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빨간색 선글라스를 쓴 것처럼 세상이 붉게 보인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고, 모두가 적이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타인을 배척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선택하는 방어기제라는 것임을 인지해야 한다. 안경을 벗어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괴로운 관계나 상황은 언젠가 끝이 난다. 언젠가 끝날 것에 괴로워하고 집착하기보다 배울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천양희 시인의 '밥'이라는 시의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라는 구절을 참 좋아한다. 삶도 밥처럼 그저 씹어야 한다. 어차피 나의 삶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