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없는 운전 실력으로 미국 살기
총 4번. 15년 남짓 되어가는 운전 경력에 비해 교통사고 횟수가 적지 않다. 주차장에서 나오기 위해 슬금슬금 후진하다 가만히 서있는 뒤의 차를 박거나, 바로 옆에 있는 기둥이 보이지 않아 뒷좌석 문을 움푹 파이게 하는 등 ‘나 혼자 원맨쇼’하다 벌인 작은 접촉 사고까지 합치면 총 7번은 되는 듯하다. 모두 초반 1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거의 일 년에 한 번 꼴이다.
“그런데 운전에 자신이 없으면 보통 운전을 천천히 하지 않나?”
좌측에서 오는 중형 트럭을 보지 못하고 우회전으로 빠르게 끼어들다 접촉 사고를 일으켜 우리 차를 폐차시켜야 했던 날 (트럭은 매우 멀쩡했다) 이제는 ‘더 이상 말해 뭐 하냐’ 듯한 표정으로
30년 무사고 운전을 자랑하는 남편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을 한다.
사실 제일 하기 싫은 것 중 하나가 운전이다. 멀미기도 있는 데다 교통 체증을 만나면 한없이 지체되는 그 시간이 아까워 운전면허가 있었음에도 한국에 있을 때는 웬만해서는 다 전철을 이용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일의 특성상 이동이 필요한 모든 경우에는 회사와 연계된 택시회사에 전화해 내 고유번호만 말하면 어디 든 곧바로 택시가 도착하니 운전 없는 편한 세상에서 지냈다 (당시에는 카카오택시나 우버도 없을 때였다).
그런데 운전하지 않으면 생활자체가 어려운 미국에 살고 있으니 운전과 나는 그야말로 애증의 관계다. 길치까지 더해 새로운 곳을 갈 때는 미리 지도를 보고 파악해 보지만 운전 내내 더욱 긴장이 되고 이후에는 극도의 피곤함이 몰려온다.
그날 남편의 말을 듣고 지난 사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평소 빨리 운전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대부분 교차로에서 큰 도로로 급하게 우회전해 끼어들기를 하다 난 사고들이었다. 차를 폐차 시킬 정도의 사건이 있던 날을 상기시켜 보면 그날 또한 오전 미팅을 마치고 끝나자마자 아이와 함께 급히 병원에 갔다. 며칠 째 코가 막혀있는 아이의 코 검사를 하며 아기 때 받은 아데노이즈 절제 부분을 다시 보기로 한 날. 그날 따라 병원 대기 시간이 길었고 진료가 끝나자마자 오후 회사 미팅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 분주히 차에 올랐다. 그리고 병원을 나서자마자 들어서는 큰 도로로 급히 진입하려 했던 것이 화근이 된 것.
하필 코비드 팬더믹 시기였고 가뜩이나 재료 부족으로 차 생산이 원활하지 않던 그해, 기본 가격보다 훨씬 높은 웃돈을 주고 차를 사야의 가계 운영 상 ‘내 지은 죄’는 적지 않았다. 갑자기 높아진 보험금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으나 내가 자처한 일이니 누구를 탓하리. 매일 ‘시간은 금이다’를 외치더니 정작 큰 것을 못보다 수많은 금덩이들을 지불했다.
그 뒤, 유난히 스케줄이 빡빡한 날, 운전을 해야 하는 날이면 의도적으로 ‘늦어도 괜찮아’를 스스로에게 수십 번 말하며 더욱 천천히 운전을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다른 때보다 더욱 집중을 하다 보니 운전 후 피로감은 더 몰려오지만 (이 피로감은 운전 경력에 반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최근 5년 간 무사고로 지내고 있으니 그 효과는 꽤 좋은 편이다.
“세상에, 나보다 운전을 더 잘하네!”
올여름 구입한 전기차에서 무료 제공되는 ‘자율주행 서비스’. 처음에는 그것을 믿지 못해 옆에서 계속 ‘차를 믿으라’는 아들의 잔소리에도 매번 불안해하며 다녔는데 2개월 이후 여러 상황에서 대처하는 ‘이 마법 같은 서비스’의 기술력을 경험해 보고는 이제는 누구보다 가장 큰 팬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를 이용하면서 밤운전이 훨씬 편해지고 운전을 할 때마다 오는 피로감 또한 극감 됐다. ‘노안 및 느린 반응 속도로 운전을 못하게 되는 노인들의 운전에도 너무 도움이 될 거라’며 신나게 자율주행을 예찬하는 나에게 남편이 찬물을 끼얹는다.
“그렇게 되면 좋은 점도 많겠지. 근데 너무 자율주행만 하다 운전 까먹는 거 아냐. 그러다 갑자기 서비스 작동이 안 되면?”
그의 말 이후 주기적으로 내 운전 실력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 모든 것에는 오류라는 것이 있고 한 가지에 전적으로 의지할 때의 위험성을 잘 알기에.
결국 기본적인 내 운전 실력을 잘 유지하며 운전 시 신중함을 유지하는 게 최선일 듯하다. 어쩌겠나. 미국 살면 운전은 필수 요소. ‘올해도 무사고로!’ 2025년 목표 리스트로 추가한다. 앞으로의 계속 무사고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