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식 문답> 적용해 보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은 무엇이로든 살아.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
권여선의 소설 <각각의 계절> 단편집을 읽고 있던 중 주인공과 그녀의 친구 정원의 대화법, 이른바 사슴벌레식 대화법을 찬찬히 되짚어 읽어본다. 꼬리를 물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뱅뱅 돌려 대답하는 형식이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도 다시 읽어보면 말이 되는 것 같다가 또 한 번 읽어보면 묘한 위안의 답으로 되돌아온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고 있어요.
‘어떻게 지내라’며 묻는 지인의 말에 요즘 우스갯소리로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져.
사슴벌레식 대화법을 응용해서 살짝 돌려 중얼거려 본다. 맞아 그렇게 지나가겠지. 속으로 몇 번을 되네이다 보니 체념 섞인 어조에서 문장의 방점 초점이 맞춰지고 무엇인가로의 확신이 느껴지면서 궁극적으로는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다.
고개를 들어 옆에 앉아 있던 남편에게 슬쩍 다시금 되물어본다.
자기야, 매일 바쁘지만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져 가겠지?
그럼, 이제껏 그렇게 잘 지내왔잖아. 다 잘 지나갈 거야.
맞아, 그렇게 될 거야.
무슨 문맥인지도 모르면서도 내 말에 동의를 해주는 남편. 그도 그렇게 느껴왔었나. 어쩌면 그도 그런 답을 듣고 싶었는지도.
한 동안 말없이 앉아 있는 우리 두 사람. 잔잔한 여운으로 서로를 위안할 수 있는 지금의 고요함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