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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치즈 Aug 26. 2023

우리집 오베와 소냐

<오베라는 남자>

“잠깐만, 나 하나 빠뜨린 게 있어서.”


온 가족이 모처럼 주말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자동차 시동을 키는 순간 부리나케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책장 속 가장 눈에 띄는 책을 골라 가방에 쑤셔 넣는다.  <오베라는 남자>.  

‘무슨 부귀영화를 바라겠다고’ 대학원 여름학기까지 수강신청을 했는지. 매일 같이 밀려오는 후회와 함께 악으로 버텨온  지난 두 달, 마침내 기말고사를 마쳤다.

후련해진 마음으로 떠나는 이 주말여행을 얼마나 기다렸던지! 여기에 그간 마음 고생한 나에 대한 보상을 빠뜨릴 수 없다.  편안한 힐링을 원한다면 단연코 소설이리라.

두 시간 남짓 지나 도착한 단골 해변. 엄마의 등쌀에 선블록으로 얼굴과 온몸이 하얘진 아들이 바다로 뛰어들자마자 ‘드디어 내 시간이다’ 외치며 가져온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오베 아저씨를 만날 시간.  참 신기하다.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들이 매번 다르니.  그러나 깊은 감동과 여운으로 눈물범벅으로  마지막 장을 덮게 하는 건 변하지 않았다.

고집불통처럼 보이는 늙은 꼰대 오베의 츤데레 같은 진면목에 깊이 매료되었던 첫 번째 만남에 이어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오베를 만날 때마다 ‘말수가 적을 뿐이지 마음을 두드리면 누구보다 마음을 활짝 열어 온정을 전해주시는’ 아빠가 유난히 보고 싶었었다. 세 번째 읽었을 때는 ‘불필요하게만 보이는 원칙들을 우리 모두가 지켰을 때 예상외로 모두가 행복할 수도 있겠다’는 자못 진지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방학이라는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기 때문일까. 오베와 소냐의 사랑에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면서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오베 그대로를 사랑해 준 그의 아내 소냐. 그녀는 그의 흑백을 억지로 자신의 컬러들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 자체를 온전히 사랑한 오베는 어느 순간 그녀를 닮아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아니 어쩌면 누구보다 다채로운 그만의 컬러들이 흑백 같은 시련들에 가려져 있는 걸 알고 소냐가 살살 검은 칠을 부드럽게 벗겨내줬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어린 시절 미술놀이인 그라타주 (grattage)에서 여러 색들 위에 덧칠해진 검은색을 부드럽게 긁어내 그 아래 숨겨진 색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해주는 것처럼.

 

책을 덮은 후 옆 비치의자에 앉아있는 남편을 물끄럼히 바라봤다. 바닷가를 향해 나란히 앉은 우리. 오랜 연애 기간을 거쳐 타국에서 둥지를 튼 후 같은 방향으로 함께 걸어온 시간을 생각해 보니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그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 왔나. 누군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명령하는 것을 싫어하기에  나 또한 웬만해서 남에게 나의 방법을 크게 강요하지 않는 성격이긴 하다. 그런데 그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까. 빤히 쳐다보는 내 눈길을 느꼈는지 그가 나를 쳐다보고는 싱긋이 웃는다. 그러더니 갑자기 요상한 표정을 짓는 남편. 갑자기 웃음보가 터졌다. 썰렁한 유머에도 쉽게 웃는 나. 그런 면에서 나름(?) 유머러스한 이 남자에게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긴 하다.


“자기는 나 만나고 바뀐 게 있어?”

“고럼 고럼, 우리 아내를 모시고 살려다 보니 이 큰 마음이 너무 넓어져서 오히려 고민스러울 정도지.”

어쩜 눈하나 깜짝 안 하고 저리 뻔뻔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이런 말에 웃음이 나오는 거 보면 나라는 사람은 웃음이 많다못해 헤픈게 틀림없다.

 

“아이고. 결국 물어 들어가야겠구나. 애들 때문에 쉴 수가 없어요~~ 자긴 내가 특별히 봐주겠어. 쉬고있으숑. 내가 봐도 난 정말 좋은 남편이야. ”

열심히 엄마 아빠를 불러대는 애들 소리에 마침내 웬만해서는 엉덩이를 잘 들지 않는 남편이 일어선다. 특기인 ‘자기 칭찬’에 스스로 어깨를 또 한번으쓱해지셨다. 감동적인 배려는 아니지만 귀여운 생색으로 포장한 그만의  배려를 간파하고 ‘파이팅!’을 외쳐준다.  


물론 ‘참으로 이기적인 인간이다’ 라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해본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배려심이 많은’ 나 같은 아내를 만나서 그 또한 자연스럽게 물들어 변한 건 아닐까. 남편따라 '스스로 칭찬하기'를 해본다. 소설에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다 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면 예쁘게 지내는 거지 뭐. 아름다운 오베와 소냐의 사랑에 억지스럽게 우리 둘을 모습을 껴맞춰보고는 혼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본다.  말도 안 되는 생각들로 여유로움을 느끼는 해변의 시간. 역시 여름 방학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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