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향기가 부르는 것들

by 봄치즈

몇 주간 찌는 듯한 무더위를 지나 조금씩 선선해진 저녁 기온이 반갑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홀로 나선 동네 산책. 그간 후덥지근한 날씨에 정신이 몽롱했는데, 이제야 맑아진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제대로 된 여름의 정취를 느끼는 듯하다.


코끝에 스며드는 여름의 초록 냄새, 그리고 길가에서 울려 퍼지는 매미 소리. 문득 매미소리 가득한 나무 아래에서 친구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했던 어릴 적 그 해 여름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여름 방학마다 내려갔던 강원도 할머니댁 한옥 마을. 대청마루에서 엄마가 깎아준 수박과 참외를 배불리 먹고 한가로이 누워 있다 보면 어느새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오곤 했다. 그러다 대문 밖 동네 친구들의 소리가 들리면 눈이 번쩍,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그 당시에도 서울에서는 흔히 겪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지금과는 더더욱 동떨어진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런 추억이 있어 타국에서도 잠시나마 그 시절로 돌아가 그때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어느덧 더욱 고요해진 저녁. 반짝반짝. 반딧불이 보였다 사라진다. 처음 반딧불을 보았을 때 들떴던 마음이 되살아나는 순간. 동화처럼 예쁜 여름밤의 장면을 가슴에 오래 담아두고 싶어 잠시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온다.


"엄마 아직 산책해요? 게임하고 싶은데 해도 돼요?" "응, 그런데 엄마 바로 집 앞에 있어. 잠깐 나와볼래?"


사실 아이에게 이 아름다운 여름밤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옆에 앉자마자 반딧불들을 발견한 아이는 역시나 신기해하며 잡겠다고 한참을 앞뜰을 뛰어다닌다.


며칠 전 한국마트에서 사다 놨던 '수박바'를 꺼내 아이에게 건네며 나란히 앉아 먹는다.


"엄마, 이렇게 있으니까 한국 여름 같아요. 소리도 냄새도 반딧불도."


몇 년 전 한국에서 즐겁게 여름을 보내고 온 후 '한국의 여름'을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아이. 그 해 여름의 장면들이 떠올랐나 보다.


반딧불의 깜박임에 더욱 짙어진 여름밤, 아이와 나는 수박바가 사라질 때까지 각자의 '그때 그 여름'을 떠올리며 앉아 있었다. '기분 좋은 오늘의 여름밤'도 언젠가 미소 지으며 추억할 날이 오겠지. 그때 떠오를 '지금의 여름 향기'는 수박바 향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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