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것들

기록을 시작한 이유

by 봄치즈
갑작스러운 소식


이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된 때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반전.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직전,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이야기 들었어요? 유치원 블루반에 다녔던 OO엄마가 요가를 하던 중에 쓰러져서 응급실로 바로 갔는데 이후 깨어나지 못했대요.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 비슷한 나이들인데... 어쩜 좋아요. 근데 언니도 핫 요가 다니지 않아요? 조심하라고요."


충격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엄마 또한 내 나이와 비슷할 텐데... 절대 남 일 같지 않은 마음. 그러면서 남은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오기 시작한다. 큰 아이들도 모두 초등학생이라던데... 누구보다 엄마의 따뜻한 품과 말들이 필요한 나이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더욱 자주 들리는 죽음의 소식들


이후 들이닥친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정부는 늦대응에 허둥대더니 결국은 셧다운 명령을 내렸다. 공포스러운 마음과 함께 시작된 24시간 집콕 생활. 한 번에 바뀌어버린 삶의 패턴으로 몇 개월은 정신없이 보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늦은 밤, 한 친구에게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안녕하냐"는 안부 문자가 왔다.


“요즘 경기도 안 좋은 데 일을 잘 되고 있어?”


나 역시 개인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의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


‘아… 이 친구 장의사 사업을 하고 있지.’


뉴욕과 뉴저지에서 장의사 사업을 하는 그녀는 반대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주말은 물론, 밤에도 정신없이 울리는 전화. 사망 소식과 장례를 문의하는 자동 응답기는 반나절이면 다 채워지고, 결국 응답기의 녹음 메시지를 미처 듣고 지울 시간도 없어 그 기능을 삭제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친구가 'War-zone'이라는 말로 함께 사진 한 장을 보냈다. 바로 집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고속도로 공터, 시신들을 보관하는 수많은 냉동 컨테이너들이 줄지어서 있는 모습의 사진이었다.


"시신이 너무 많아서 하루에 3구만 넣을 수 있는 걸로 정해져 있어."


위안이랍시고 ‘요즘 같은 때에 사업이 잘 돼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을 전하기엔 그야말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물론 백신이 개발된 지금 그 공포심 또한 친숙해지고 익숙해졌지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도래했던 작년 초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저 컨테이너들 속의 사람들 중 '죽음이라는 손님의 기척'을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애틀랜타 총격 사건이 다시 던진 질문


지난 4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애틀랜타 연쇄 총격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 20대 남성이 마사지 및 스파 숍에 들어가 한국인 여성 4명을 포함하여 총 8명을 연속적으로 총기 사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으니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미국 사회에 숨어있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주의' 및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것으로 현재까지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 마음이 너무 아팠던 것은 희생자들 중에 두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 있다는 사연이었다. 그 아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때마침 지인들의 카톡으로 전해져 온 Gofund 링크. 바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희생자 김현정 씨 두 아이들을 위한 기금 모음이었다. 한창 엄마 손이 필요한 두 아이들의 모습에 먹먹해져 오는 가슴. 그러면서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만약 우리 부부가 일찍 세상을 떠 우리 두 아이들이 남겨지게 된다면?


내가 오늘 갑자기 죽는다면?


물론 아이들에게 풍요로운 경제적 부를 남겨줄 수 있으면 바랄 나위가 없겠다. 그러나 그만큼, 아니 어느 면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래의 시간들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을 바라보는 지혜들이 아닐까 한다.


부를 갖고 있다고 다 삶을 행복하진 않기에. 또한 부가 생겼다가도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 있는 것이 우리네의 인생 아니었던가.


행복했다가 언제든지 내 마음에 따라 불행해지는 것 또한 우리들의 삶입니다.


랜디 포시 교수의 책 <마지막 강의>가 큰 울림을 주는 것 또한 이 때문이 아닐까. 췌장암으로 삶이 단 몇 개월 만에 남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삶의 조언과 인생의 가르침을 남겨주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이 살 앞으로의 세상과 내가 겪어온 세상에는 큰 간극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선인들의 가르침을 책에서 다시 되짚어보고, 인생의 선배나 산 경험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애틀랜타에 덩그러니 남은 두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언제가 막연히 하고 싶었던 그 일'을 용기내어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이야기를 틈틈히 쓰고 모아보자. 훗날 돌아보면 그리워질 소중한 내 삶의 작은 일상의 기록을 시작해보자.


괜찮아, 엄마도 그랬어


이 전처럼 나름의 정신력으로 '무던히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라고 자부했던 엄마의 삶. 그러나 예상 밖의 고민 출몰과 책 대로 해봐도 같은 답이 나오지 않는 결과들로 지칠 때가 있다. 그때마다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부모님의 말씀, 엄마의 따뜻한 조언이었다. 그중 가장 큰 위안이 되었던 것은 바로,


"괜찮아, 엄마도 그랬어."


엄마의 이 말은 항상 그 어떤 좋은 책 보다 마음에 와 닿은 따뜻한 격려이자 위로였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저 관심 없는 개인적인 일기이자 지난날에 대한 회고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 엄마의 이야기가 내게 그랬듯 내 아이가 내 나이쯤 되었을 미래의 내 딸아이가 훗 날 내가 고민했던 그 문턱에서 터덕거리고 있을 때 내 글로 작은 위로를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의 기록들을 보며 '엄마도 이랬구나' 하는 마음의 작은 위안이 되길 간절이 바라본다. 나아가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 힘을 얻는 분이 있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딸 아이가 내 나이가 될 무렵 '행복한 자기 자리 찾기'를 도와주는 선물로 내 글들을 건네줄 그 날이 올 수 있길 소망해본다.


* 마지막으로 다시금 애틀랜타 총격 사격으로 숨진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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