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루틴

by 봄치즈

일여 년 전, 분명 다이어리에 빼곡히 적혀 있는 투두리스트들을 모두 완료했음에서 전혀 기쁘지 않았었다. 여러 개의 핀을 두 손으로 정신없이 돌리며 외줄 타기를 하는 광대인 양 매일 여러 개의 프로젝트들을 넘나들며 완벽히 마감을 마쳤음에도 오히려 공허감이 느껴졌던 것 같다. 퇴근 후 마음이 가벼워져야 하는데 이어서 들어야 할 대학원 강의 생각에 퇴근시간 오히려 숨이 막히는 날이 많아졌다. 이러다 공황장대가 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무렵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올 초 대학원 수업을 중간에 드롭시키고 올 한 해를 모두 쉬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왜 정체된 느낌이지?”

“미래를 위한 준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왜 나는 더 초조하고 불안한 걸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리 힘들게 대학원까지 다니고 있을까?”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살고 있는 내가 느끼면 안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매일 100미터 달리기만 하다 밤마다 번아웃이 되는 듯한 느낌. 결국 숨 이 턱끝까지 차오른 것 같은 올여름, 몇 년 만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엄마 아빠를 보러 가던 날 모든 것을 훌훌 벗어던지고 다시 안락한 안식처로 가는 느낌이었다. 그냥 한 가지만 생각했다.


‘굳이 지금 이유를 찾지 말고 아무 생각 없이 편안게 빈둥거리다 오자.’


과거 같았으면 휴가임에도 매일 노트북을 열었으련만 2주간 일과 대학원은 기억에서 지웠다. 회사 일 또한 ‘자르라면 자르라지’ 배 째라 식 마인드였다.


엄마, 아빠와의 ‘그저 마음 평안한’ 꿈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무렵에는 ‘쩍쩍 갈라진 메마른 땅 같은’ 나의 마음이 기다렸던 단비를 맞은 듯 조금은 촉촉해져 있었다.


부모님과 보내면서 아마도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마음의 편안한 행복을 느껴서 그렇지 않았을까. 그와 더불어 이전에 내가 설정해 놓았던 그 성공의 모습에는 과연 내가 진정 원하는 행복의 면모가 있긴 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당시 내가 설정해 놓은 목표들을 들여다보니 사실 그때그때 읽었던 자기 계발서들에서 내 것인 양 뽑아낸 요소들 (성공한 커리어, 수익성을 내는 취미, 안정된 노화 등)로 짜깁기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바라는 행복은 ‘가족 간의 사랑’, ‘마음의 풍요로움’, ‘재미’ 등 본질에 가까운 형이상학적인 것들이었음에도 말이다.


한국에서 돌아온 이후, 미세한 부분에서 조금씩 변화가 있었다. 우선적으로 이 전보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산책, 몽상, 글쓰기, 가족과의 대화 등 내가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더 많이 집중을 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 세워두웠던 목표들을 완전히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번아웃’과 ‘허망함’을 안겨주었던 그것들의 무한 질주에 ‘속도방지턱’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능들을 매일 첨가했을 뿐이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시간.’


겉으로 보기에는 여름의 이전과 이후에 있어 큰 변화가 없다 (같은 출퇴근 시간, 아이들 라이드 시간, 종종 있는 야근 등). 그러나 확실히 내 마음의 상태에는 큰 변화는 있었다. 당장 매일 썼던 글쓰기의 내용들만 봐도 그 느낌부터가 다르다. 지치고 건조한 느낌만 드는 것이 여름 이전의 글이었다면 여름 이후의 글에는 확실히 여유감이 느껴지고 매일의 내 마음이 매일 다른 색을 발산하는 듯했다.


여전히 나의 삶의 최종점 모습에 대한 확신은 없다. 그러나 ‘투두리스트’를 완료시키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던 지난 기간처럼 매일을 살지는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도 오전마다 즐기고 있는 ‘나만의 몽상, 산책의 시간’을 평생의 루틴으로 삼지 않을까 한다.


“삶이란 끊임없이 흔들리는 행복의 균형점을 매번 찾고 조율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우연히 만난 오늘의 한 글귀가 어느 때보다 공감이 간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분좋은 하루를 위한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