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보고 있지? 자고 있었어요?”
이런, 또 졸았나 보다.
“아냐, 아냐, 엄마 보고 있었어.”
하지만 이미 내 거짓말을 눈치챈 아들은 방금 전 벌어진 TV 속 장면들을 다시 설명해 준다. 10분 뒤 다시 천근만근이 되는 내 눈꺼풀. 정신이 몽롱해질 무렵 또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자면 안 돼요!”
어릴 적, 저녁에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 항상 옆에서 졸고 있는 엄마를 발견하고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는데 어떻게 졸릴 수가 있지. 졸고 있는 엄마가 중요한 순간을 놓칠세라 몇 분마다 한 번씩 옆자리의 엄마를 체크했고 엄마의 눈꺼풀이 내려오려 하면 “엄마, 엄마 지금 자면 안 돼. 이 장면 진짜 중요한 장면이야. 어떻게 됐다면…” 소리치며 엄마를 흔들어 깨우곤 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난 그때의 우리 엄마로, 아들은 그때의 내가 되어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가 왜 그렇게 졸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가 됐다. 나라고 저녁에 왜 가족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하루 종일 여러 일에 에너지가 이미 방전된 터, 저녁 식사 후 씻고 나면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로함이 몰려오니 저녁 9시-10시 사이에 내려오는 눈꺼풀은 정말 감내하기 힘든 것이었다. (다른 일을 하면 괜찮은데 왜 유독 TV만 보면 졸릴까.)
“엄마, 그냥 방에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렇게 앉아서 졸면 불편할 것 같아.”
엄마를 깨우다 깨우다 자꾸 조는 엄마에게 살짝 짜증을 내면서 결국 들어가서 주무시라 말씀을 드리곤 했었다. 그럼에도 계속 ‘아니야, 보고 있어.’ 라며 굳이 내 옆자리에 불편한 자리에 앉아있던 엄마가 기억난다.
그 또한 이제는 이해된다.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엄마랑 같이 보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 내 옆에 함께 하고 싶어 하신 거였다. 나 역시 지금 그 마음을 똑같이 느끼는 중이다.
“엄마, 저녁에 엄마 일해야 해요? 아님 이따 oo 프로그램 같이 보고 싶어요?”
저녁 식사 후 아이가 물어본다. 자기주장을 펼치기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물어보는 아들의 말하기 방식. 즉, 엄마랑 프로그램을 같이 보고 싶다는 말이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보고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임을 너무 잘 알기에 (내가 그랬다) 최대한 아이에게 맞춰주고 싶은 마음. 게다가 일한다는 핑계로 둘째와는 함께 해주는 시간이 더 적은 것 같아 이 아이에게는 더욱 마음이 약해진다. 게다가 불과 며칠 후면 학교 개학인데 원하는 걸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 것 같아 짠한 느낌이 몰려온다.
그래, 오늘은 내가 기필코 프로그램 끝날 때까지 눈꺼풀이 내려오는 걸 막으리라.
큰 각오를 하지만 역시나 밤 10시가 다 돼 가자 슬슬 내려오는 눈. 아이는 십 분마다 내 얼굴을 바라보며 내가 자나 안자나 체크를 한다. 이에 “어머, 어머”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하며 일부러 갖가지 반응을 보이며 ‘엄마는 깨어있다’를 알려주려 용쓰니 아이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신나 한다. 10시 반, 임계점에 다다랐다. 참을 수 없는 눈꺼풀의 무게여! 세수라도 하고 오고 싶은데 딱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스토리의 흐름을 방해할 수 없는 상황.
자리에서 일어나 TV앞을 왔다 갔다 하며 그때부터 서서 보기 시작한다. 아이는 내가 스토리에 흥분하여 일어난 줄 알고 더욱 같이 몰입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서 있는 상태로 무사히 끝난 프로그램.
“엄마 너무 재미있지? 내일은 다른 거 볼까요?”
자기 전까지 방금 본 내용을 말하며 신나 하는 아이. 그 모습에 ‘최고의 엄마’가 된 듯한 행복감을 느낀다. 모처럼 ‘뜬 눈’으로 프로그램이 끝날 때마다 잘 마쳤다는 또 다른 성취감까지. 무엇보다 이제는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