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온전할 때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
"나는 과연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책을 읽으면서 계속 반추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과거 대학 시절 필독서라는 이름 아래 형식적으로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내용에 대한 기억보다는 '생각보다 어려운 철학서'라는 느낌으로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랑의 결실이라는) 결혼 이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접하게 된 이 책은 감성적으로만 생각해 온 '사랑'을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설득력 있는 책이었다. 동시에 엄마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사랑의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최고의 육아서이기도 했다.
사랑은 능력이자 주체적인 활동이다
독일 출신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철학자, 그리고 인문주의적 사상가인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 및 <소유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책에서 또한 '사랑'이라는 대상을 ‘인간’ 내면적 성장과 ‘자본주의 사회’와의 관계 안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현대 사회에서 읽어도 괴리감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시작점에서부터 저자가 제시한 우리가 사랑에 대해서 갖고 있는 잘못된 전제들은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었다. 우리의 생각처럼 사랑이란 절대 '사랑을 받는 문제'도 아니며 '대상'의 문제 또한 아니며, '빠지게 되는' 감정적인 경험도 아닌 ‘활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랑을 추구하게 되는 이유로 인간의 실존 문제를 거론한다. ‘나라는 존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들의 답을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지금, 이같이 실존이란 개념부터 시작하는 저자의 논리는 개인적으로 꽤 관심이 갔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순간 이성이 생기면서 실존적 존재가 되어버린 인간은 그와 동시에 갖게 된 ‘자연과의 분리’ 상태에서 불안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을 잊기 위한 방법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합일'을 위한 노력을 해오게 된 것이며 저자는 결국 '사랑'으로 다른 사람과 합일이 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답이라고 말한다.
"인간─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은 동일한 문제, 곧 어떻게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가, 어떻게 결합하는가, 어떻게 자신의 개체적 생명을 초월해서 합일을 찾아내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나의 사랑은 적극적이었나
사랑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에서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내용은 "성숙한 사랑이란 각자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합일을 이루는 활동"이라고 말한 부분이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남녀의 사랑에 있어서 본래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그것에 대해 인정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터라, 기생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서적 사랑’이 아닌 ‘자신의 통합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기존의 나의 생각을 지지해 주는 부분이었다. 그러면서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편으로 뜨끔했던 부분은 더 나아가 내 사랑에는 '적극적으로 사랑을 주고자 하는 능동성을 띠었었나' 하는 부분이었다. 남편과의 관계를 바라볼 때 사랑을 수동적으로 받고자 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주는 사랑'의 형태도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또 다른 의견으로 "결혼의 가장 중요한 표현의 하나는 '팀'이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부분에서는 한 대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나의 결혼 생활 중 많은 삶의 부분을 합리화시킬 때 자주 떠올리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을 꾸려가는 과정에서 에너지 및 시간관리가 항상 중요했고, 이러한 효율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 안에서 서로 간의 역할을 암암리에 나누고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조건부적인 사랑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비교해 봤을 때에도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주는 사랑'이라는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사뭇 미안함이 드는 대목이었다.
부모로서의 사랑, 존경과 지식의 부재
동시에 부모와 자식 간의 '성숙한 사랑'을 언급한 부분도 마음에 와닿았는데 특히 그것의 기본 요소로 보호, 책임 이외에도 존경과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로서 처음의 두 가지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존경과 지식의 부분에 도달했을 때는 내가 과연 충분히 노력을 하고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특히 존경이 없다면 책임이 소유욕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말은 나에게 많은 경종을 울린다.
'아이를 보호하고 잘 인도해야 하는 것은 어른의 도의 및 책임이다'라는 핑계로, 나는 얼마나 많은 아이의 영역들을 침투했을까. 특히 지식 또한 상대에 대해 알고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 노력을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기울여왔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와 사랑의 붕괴
이어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붕괴 현상을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인간의 소외감이 더욱 강화되고, 그것으로 나타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극단적인 성향을 띈 단체들과 그들의 단단한 연대감 또한 ‘집단의 소속감을 통해 불안감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더불어 소비를 하면서 충족감을 느끼고자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 행태와 틱톡 및 유투브 등 SNS중독 현상 또한 현대인의 공허함과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여러 행태들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현대인들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더 키운다는 점이다.
사랑의 전제 조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고로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인 분리에 대한 불안을 해소시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 즉 ‘사랑의 합일’을 이루기 위한 실천 방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저자는 ‘성숙한 사랑’의 기술을 잘 연마하고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는 특히 스스로 온전히 '현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건강하지 못한 사랑(의존적인 사랑을 하거나 주체성 없이 수동적으로 상대에게 따르기만 하는 사랑, 혹은 집착을 하는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본인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자립심도 없는 사람이 많다. 홀로 있는 것을 외로워하고 누군가가 항상 필요하며 그들에게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 즉 저자가 말하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에 대한 사랑이 충만하면 다른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기대할 이유가 없다. 또한 스스로 이미 충만함을 느끼고 있다면 ‘사랑을 줄 수 있는’ 에너지 또한 활발해질 터이니 성숙한 사랑의 가장 필요한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정신 집중을 배우는 가장 중요한 단계는 홀로 있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사실상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은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은 사랑의 능력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역설적으로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조건이 된다."
사랑, 현대인의 필수 덕목
고전 문학부터 현대 예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이 '사랑'을 다룬다. 이는 사랑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근원적인 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은 연인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 친구, 동료 등 모든 인간관계의 밑바탕에 사랑이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천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이 오랫동안 대학 필독서로 자리 잡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성숙한 사랑을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으로 그 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법. 무엇보다 온전히 나로 설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책을 덮고 나니, 요즘 실천하고 있는 혼자만의 명상 시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를 온전히 세우고, 나아가 타인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과정이 아닐까.
더 깊은 의미를 담아 오늘 그 시간에 집중해 본다.
"사회는, 인간의 사회적이고 사랑할 줄 아는 본성이 그의 사회적 존재와 분리되지 않고 일체를 이루는 방식으로 조직되어야 한다. 사랑만이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건전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면, 상대적으로나마 사랑의 발달을 배제하는 사회는 인간성의 기본적 필연성과 모순을 일으킴으로써 결국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