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국에 오기 전 핀란드의 가족 일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신기했던 장면 중 하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가 육아휴직 기간을 갖고 아이의 유치원 등하원을 도우며 집안일 등 육아를 전적으로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엄마 또한 자유로운 출퇴근 시간에 요일제로 재택근무를 하며 일과 육아를 여유롭게 병행하고 있었다.
외국이니까 가능하겠지. 당시 한 달에 2주는 기본 야근을 하고 이틀은 날밤을 새야만 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이 같은 워킹맘라이프는 그야말로 먼 나라 이야기였다. 게다가 한창 ‘커리어 우먼’ 생활을 즐기고 있을 때라 워킹맘의 삶은커녕 결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마저 그려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측에서 벗어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라 하지 않았나. 장기 연애를 하고 있었던 당시 남편과의 결혼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신혼여행을 간 우리에게 덜컥 찾아온 ‘허니문 베이비’는 그야말로 뜻밖의 선물이었다. 지금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기쁨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 찾아왔다. 천만다행스럽게도 일찍 통잠을 자고 잘 먹고 잘 자는 아이 덕분에 나의 ‘일하고 싶은 본능’은 다시금 살아났고 한국에서의 경력과 주변의 인맥으로 운이 좋게 난 아이가 돌도 되기 전, 미국의 워킹맘이 되었다. 더군다나 ‘일을 어떻게 하나 처음에는 간을 좀 보자’라는 회사의 의도와 타국에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가기가 불안했던 초보 엄마의 마음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재택근무’의 조건을 획득했다. 웬 횡재냐. 그때 갑자기 떠오른 장면은 텔레비전 속 여유로웠던 핀란드의 엄마였다. 그녀와 비슷한 환경의 재택근무를 하게 된 나는 그림의 떡같이 느껴졌던 그녀의 여유로운 워킹맘 삶을 내심 그리고 있었다. 나 또한 그 특별한 삶으로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핀란드 엄마의 삶은 역시 꿈이었다고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의 삶에는 언어의 장벽과 타향살이, 새로운 분야를 배워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고 이는 '그 엄마의 삶과 난 전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아내, 엄마의 자리도 처음이었으니 모든 것이 낯설었고 하루하루는 새로운 미션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무슨 회의가 이리 많담. 미국인들이 말하고 토론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특히나 단독 프로젝트를 맡아 홀로 조용히 일해왔고 그것을 좋아하는 내향형인 나에게는 크나큰 곤욕이었다. 게다가 재택근무다 보니 당시에는 전화 미팅이 많았고 (현재는 화상미팅으로 다 대체되었지만)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영어 단어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온 집중을 다하다 보면 금세 진이 빠졌다.
재택근무라고 일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쉬거나 육아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9-5시는 어디까지나 일하는 시간이다. 게다가 난 이 회의 신입이었다. 수시로 말이 걸려오는 회사 채팅창과 전화에 한 시도 자리를 비우기가 힘들었고 어떠한 일을 맡으면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아야겠다. 더군다나 5분만 컴퓨터에 움직임이 없거나 자리를 비우면 나의 위치가 ‘자리비움’으로 뜨는 시스템에 회사의 노트북은 족쇄 아닌 족쇄였다.
물론 일하는 시간 베이비 시터를 고용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출퇴근을 하지 않아 오전 8시 반부터 불렀으니 (보통 다른 워킹맘들은 7시 전에 부른다) 그만큼은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이비시터는 그야말로 아이 케어만 해준다. 특히나 한국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서 해주겠지’라고 믿을 수도 없다. (물론 센스 있는 사람이라면 눈치껏 아이 낮잠 잘 때 집안 정리도 해주지만 미국에서 살다 보면 맡은 것만이라도 잘해주면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따라서 아이의 매일 이유식 준비 및 아이 빨래 등은 아이 케어 이외의 것은 모두 내 몫이었고 이 모든 것은 일 시작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일하는 중 잠시 쉬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베이비시터와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를 보는 여유로운 엄마의 모습... 이 또한 상상에서나 가능하다. 오전 9시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일만 하는 시간이다. 신입의 기본은 누군가의 보조를 하거나 협력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수시로 날아오는 채팅창을 확인하며 피드백을 해야 했고 매일 퇴근 5시 전까지 항상 제출해야 한 제출물이 있었다. 게다가 난 원어민도 아니니 보고서 제출 전 철자 하나 틀린 게 있을까 남들보다 두세 번은 더 검토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시간 방문 밖에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미소보다는 거슬린다는 짜증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질 때도 많았다.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 또한 따로 없지만 (회사마다 다르다) 12-12시 반 사이에는 회의가 보통 없다 보면 그 시간은 보통 준비해 놓았던 아이 유아식을 데워 먹을 준비를 하는 데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 책상 앞으로 들어올 때는 밥 한 숟가락 넣은 국그릇을 가져워 책상 앞에서 점심으로 때웠다. 이후에도 틈틈이 거실과 아이방을 체크하며 점심은 잘 먹고 있는지, 낮잠 시간에는 잘 자는지, 대소변, 산책 스케줄 등 매일의 루틴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을 했으니 나의 모든 감각들은 매일 예민함 속에 풀로 가동됐다. 물론 한 시간씩 여유롭게 점심시간으로 썼던 한국의 직장 생활이 그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워킹맘으로서 ‘일하는 시간에는 올곧이 일만 하고' 빨리 퇴근해서 이후 시간을 아이와 많이 보내는 것이 일하는 엄마로서의 죄책감도 줄이고 나쁘지 않다 생각했다.
이러한 '효율성이 최고인 삶’ 아이가 누구보다 안정적으로 잘 지내올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러나 반은 '출퇴근하는 엄마'의 마음으로 또 다른 반은 '전업주무 엄마'의 마음으로 둘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노력해 온 내 삶은 아이에게는 완벽한 엄마였지만 엄마의 개인적인 '건강한 삶'에는 그리 좋지 않었다. 체력보다도 정신력으로 버텨온 듯한 처음 3년. 최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열심히 살아왔기에 절대 후회는 없지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소소한 행복들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다. 그저 이유식만 졸업하길, 기저귀만 떼길, 의사표현을 할 수 있길, 감기 걸리지 않길, 유아원만 잘 들어가길... 등 내가 할 일들이 하나 둘 줄어드는 그 단계가 하루빨리 찾아오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3년 정도 지나 어느 정도 일도 익숙해지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을 보게 됐다. 그 핀란드 엄마는 너무나 능숙한 모습으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던데 그 사이 난 창밖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었구나 깨달았다. 그제야 조금씩 보이게 되는 주변에 임신한 팀장들과 워킹맘들. 그런데 그 핀란드 엄마처럼 활기차 보였고 웃음기가 만발했다. 어쩌면 난 미국 적응도 안된 새내기 워킹맘이었으니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싶었다.
그즈음 알게 된 둘째 임신. 은근 둘째를 생각해 본 시점이었기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러나 첫째 육아를 잘 해내오긴 했는데 둘이 되면 너무 버거워지진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그러면서도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된 미국의 직장생활. 어쩌면 미국 워킹맘의 ‘여유로운’ 삶을 진짜로 체험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