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그리워지는 순간
큰아이가 4돌에 가까워져 육아가 한결 수월해진 무렵 알게 된 둘째 임신 소식은 꽤나 반가웠다.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는 이미 큰아이 출산 후. 고로 미국 회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어 육아 관련 복지에 대해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모든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3년 차 직장인이었기에 '복지 좋다'는 말만 들었던 외국 회사의 진짜 혜택을 이제야 제대로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 한없이 여유로워 보였던 텔레비전 속 그 북유럽 워킹맘의 삶이 내게도 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무엇보다 회사 제공 의료보험 서비스가 최고 수준임을 자랑하는 곳 아닌가. 이 모든 복지를 다 누리고야 말겠다! 굳은 다짐과 함께 HR 팀장에게 출산 육아 관련 복지 정책 문서를 요청해 매의 눈으로 다시금 꼼꼼히 훑어보았다.
"출산 휴가는 최대 12주까지 보장되며 이 기간 유급(실급여의 75%)을 보장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다시 말해 12주 이후부터는 무급 휴가조차 보장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일하고 있는 여동생을 보니 출산휴가 의외에도 원하면 1년까지 무급휴가를 쓸 수 있던데, 이 무슨 천청벽력 같은 이야기인가. 한마디로 미국에는 연방 차원에서 보장된 유급 출산 휴가는 이야기였다. 알아보니 미국이 OECD 국가 중 유급 출산휴가가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 유일한 나라란다.
따라서 출산휴가는 '권리'가 아니라 '회사 복지'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유급 휴가 또한 회사의 재량이나 주 정부에 의해 보장된 것. 따라서 보통 '12주 무급(조건부) 휴가가 기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조차 회사 직원 50인 이상에 1년 이상 근무해야 보장받을 수 있다. 남편(아빠)의 육아휴가는 법적으로는 가능하지만(조건부 12주 무급), 실제로 얼마나, 어떻게 쉬느냐는 회사와 주 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제야 '우리 회사는 12주까지 유급휴가 기간을 제공한다'는 HR팀의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면서 아이 출산 후 2개월 만에 복귀한 여자 팀장이 떠올랐고, '12주 최소'가 아닌 '12주 최대'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렇다고 과거 내가 봤던 그 유럽 워킹맘 다큐멘터리 내용을 잘못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난 미국도 유럽과 같겠더니 더 좋겠지만 막연한 착각을 한 것이다.
알아보니 유럽은 전체적으로 미국보다 훨씬 긴 기간, 더 높은 소득대체율의 유급 출산, 육아휴가를 보장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출산 전후 합쳐 최소 14-20주 정도의 유급 출산휴가를 법으로 보장했고, 이후에도 원한다면 이를 연장하여 유급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기본 유급 출산휴가 16주(소득 100%)에 이후 엄마·아빠 각각 최대 8개월 육아휴직(소득대체율 약 80%)을 사용할 수 있었다. 독일은 부모가 합쳐 최대 3년까지 육아휴직(Elternzeit)을 사용할 수 있고, 이 중 최대 14개월까지는 이전 소득의 약 65-67% 수준의 부모수당(Elterngeld)을 받는 구조였다. 스웨덴, 독일, 노르웨이 등은 부모가 휴직 기간을 나눠 쓰면 오히려 추가로 급여 월수를 더 주어 '아빠가 꼭 일정 기간은 사용하도록' 설계해 남성 육아 참여를 강하게 유도한다니, 같은 외국이라도 이리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적잖은 실망감에 이어 그제야 큰아이 때 겪었던 열악한 출산 후의 생활들을 떠올려보게 됐다. 산후조리원은 당연히 없었고(캘리포니아 쪽에는 한인들이 만든 조리원이 생겼다고 들었다), 출산 후 입원 이틀이면 퇴원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세 가족의 리얼 삶을 시작해야 했다.
출산에 맞춰 미국에 들어와 주실 엄마 덕분에 엄마 찬스를 쓸 수 있었지만, 생각지 못한 짧은 출산 휴가 보장은 쉽지 않은 임신 기간을 잘 견뎌낼 동력은커녕 의욕마저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찾아온 출산일. 오랜만에 미국에 오신 엄마에게 육아와 집안일만 맡기는 야박한 딸로 남지 않았으나 역시나 누군가의 손이 절실했던 12주의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고 있었다. 나름 머리를 굴려 출산 직후 산후조리사를 불러 도움을 받았고 그 기간 이후 엄마가 오시게 해서 최대한의 도움 받는 시간을 늘려다. 다행히 모든 것이 처음인 큰아이 때때보다는 훨씬 능숙했고 모든 것에 잘 적응했던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 이 모든 일과에 '일하는 시간'까지 더해진다고 생각하니 점점 걱정이 되면서 복귀 2주 전부터는 잠이 오지 않았다.
운 좋게 친한 언니의 추천으로 일하는 시간에 아이를 봐줄 좋은 남미 내니를 구했지만, 그야말로 아이 보는 일만 하기 때문에 이 외 이유식 준비, 빨래, 집안일은 모두 내 몫이다. 큰 아이 때는 한국분을 만나 그래도 한국인의 정으로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기에 인종이 다른 내니에 대해 불안감도 있었다.
겨우 맞춰놓은 아이의 낮잠 시간, 놀이 시간이 나 없이 잘 유지될 수 있을까?
이에 맞춰 반나절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큰아이의 픽업은 일하는 중간에 해야 하는데, 일에 지장이 없을까?
생각할 것들은 너무 많았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답 없는 고민이었기에 불안과 걱정만 늘어갔다.
과연 이 모든 걸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될수록 자신이 없어졌고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됐다.
그리고 복귀 일주일 전, 나는 팀장에게 보낼 사직서 내용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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