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하기에 앞서 여러 고민 끝에 아무래도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결정했습니다. 우선 큰아이가 둘째가 태어나면서부터 유치원을 시작했는데, 아직 적응을 잘 못해서 반나절만 다니고 있어 낮에 픽업을 해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둘째 아이도 이제 겨우 3개월이라 아직 밤에 통잠을 자지 않고, 낮잠 스케줄도 규칙적이지 않은 터라 내니가 있더라도 가끔씩 가서 봐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나 이번에 복귀해서 맡을 프로젝트들 중 OO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에게 수시로 보고도 많이 해야 하고 마감에 예민한 여러 보고서가 많아서, 이 같은 일들을 다 할 수 있을지 적잖이 걱정이 됩니다. 남편 또한 얼마 전 이직하여 이전만큼 육아를 많이 해주지 못할 것 같고요. 현재 하는 일에 애정이 있어 여러 아쉬움이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며칠 동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쓴 사직 이메일. '앞으로 감당해야 할 두 아이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두려움'은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아쉬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게다가 눈 깜짝할 사이 지나버린 출산 휴가 3개월은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앞날에 대한 준비 기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같은 결론은 결혼 전 직장 생활을 할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다. 7여 년 다녔던 한국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결혼 후 미국으로 왔을 때에도 해도 나의 미래에는 '커리어우먼'의 모습뿐이었다. 그만큼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고, 일하지 않는 나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워킹맘의 삶은 생각보다 피곤했다. 그래도 한 아이의 육아는 겨우 해냈는데, 앞으로는 두 명 분을 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물론 내 몫의 월급이 사라지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모든 것을 다 내 뜻에 맞출 수 없는 법.
에라 모르겠다. 고민 끝에 눈을 질끈 감고 이메일 보내기를 눌렀다. 이후 반나절 이상 10분에 한 번씩은 이메일함을 확인해 봤던 것 같다. 그리고 마침내 받게 된 팀장의 답변.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복귀를 앞둔 OO 씨의 걱정과 고민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급작스럽게 결정하기보다는 시간 되실 때 화상으로 만나서 현재 갖고 있는 고민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 역시 두 아이 엄마이기에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편한 시간대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행히 타고난 나의 좋은 인복은 미국에서도 이어졌다 (지금 와서 봐도 미국에서의 이 첫 팀장과의 만남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공과 사는 분명한 것이 미국 회사라 들었기에 사직서에 대한 첫 반응으로 냉랭할 것만 같았지만 예상과 달리, 화상 미팅으로 만난 팀장은 엄마처럼 따뜻했다. 아이의 안부와 함께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걱정거리에 대해 물어보았고 개인적으로 많은 공감을 해줬고 나아가 회사 측에서 배려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여러 방안들을 제시해 주었다.
안 그래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나의 프로젝트 수와 양이 너무 벅찰 것 같아 도와줄 어시스턴트를 붙여주겠다는 것. 또한 아이들 유치원 픽업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 시간은 자유롭게 나가서 아이를 데려오고, 필요하면 그 시간을 퇴근 후에 자율적으로 보충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회의 시간에 아이와 관련된 일이 생겨 참여하기 힘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서 조정을 하거나, 빠지게 될 경우 추후 업데이트를 제공할 수 있으니 너무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했다. 또한 자신도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는데, 막상 시작해 보니 여러 부분에서 다 맞춰져 가더라며 우선은 복귀를 해서 1-2달이라도 일을 해보고 결정하라며 지금 너무 급히 결정하는 것을 재고하길 바랐다. 일정으로 많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칭찬과 함께 진심으로 나를 공감하고 지지해 주었다. 더불어 현실적으로 팁으로 회사의 자유로운 PTO 사용 제도와 육아 보조 지원금 정책 등도 알려주고 무엇보다 아이가 태어나면 병원 체크업을 자주 가는데 회사에서 제공하는 의료보험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며 실용적인 혜택 또한 알려주었다. 가장 놀라운 결정적 제안은 생각지 않았던 연봉 인상이었다. 그 간의 성실함과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며 앞으로의 인상 계획도 언급한 것이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누구라도 단번에 거절하기가 어려웠으리라. 남편과 상의해 보겠다는 말로 마무리했고, 전적으로 '내 뜻에 따르겠다'는 남편의 의견이 이어지면서 다시 칼자루는 나에게 넘어왔다. 물론 혹하는 제안이지만 그럴수록 신중하고 싶었다.
그 순간, 아이 임신 무렵 베스트셀러였던 페이스북 여성 COO 셰릴 샌드버그가 쓴 책 <린 인>이 떠올라 책장에서 거나 밑줄을 쳐놓았던 문구들을 찾아 읽었다. 그녀가 일하는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내용을 담은 부분이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도 도전하세요"
"자신을 먼저 제한하지 마세요"
"미래의 선택을 위해 현재의 기회를 포기하지 마세요"
"불안해도 앞으로 기울어 보세요 (Lean In)"
여전히 남성들에 비교해 여성 지도자들이 많지 않은 사회 현상을 꼬집으며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 이외에 여성들 스스로 자신을 가두는 행동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현재 임신 계획 중인데 내년에 아이가 생기면 힘들 거야'라며 아직 임신도 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결혼도 하기 전에) 미리 벌어지지 않은 미래의 문제로 현재의 기회를 스스로 접는 여성이 많다는 것이다. 이에 샌드버그는 실제로 그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 기회를 잡고 그 자리에 먼저 가 앉아 있으라고 말한다.
또한 여성은 승진 기회에 있어서도 남성보다 조건이 100% 맞아야 지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성장은 준비된 후가 아니라 하면서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스스로 '잘할 수 없을 것' 같고 자격이 부족해 보여도 테이블에 앉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라고 말한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아' 혹은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등 외부 장벽보다 내부의 '자기 검열' 때문에 한 발 물러선다며, 가장 큰 제약은 종종 스스로 안에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아직 오지도 않은 삶의 단계(결혼, 육아, 돌봄 등)를 이유로 지금의 성장 기회를 내려놓지 말 것을 재차 강조했다. 즉 미래의 '혹시'를 위해 현재의 '확실한 기회'를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확신이 있어서 행동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면서 확신이 생긴다'는 그녀의 메시지를 다시 읽으니 조금 용기를 얻는 듯했다. 특히 '두려움은 멈추라는 신호가 아니라 성장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부분은 나에게 사직서를 내려놓고 어쨌든 이번 제안을 받아들여 한번 나아가 보라는 의미로 들렸다.
"저를 배려한 여러 친절한 조언과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말씀대로 우선 시작해 보면서 그 안에서 제가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회사에서 제공하는 여러 제도들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와 저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이용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금 시간을 들여 진심 어린 말씀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나는 사직 메일을 철회하고 복귀 의사 메일을 다시 보냈다.
하긴, 결혼을 하면서부터, 미국에 오면서부터, 그리고 아이를 낳고 미국 회사에 취업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나에게 처음이자 도전이지 않았나. 뒤돌아보면 비록 멋진 고속 주행은 아니었더라도, 외바퀴 자전거를 탄 사람처럼 매일 흔들리면서도 조금씩 나아가 여기까지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니 이번 기회 또한 새로운 시작일 수 있겠다 싶어다.
꿈같이 지난 간 3개월 후 맞이한 복귀. '두 아이의 육아, 워킹맘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