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IME] 라이드: 미국맘의 보이지 않는 노동

by 봄치즈

"이놈의 라이드..."


미국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본 엄마라면 미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이동에 직접 운전을 해줘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부산스러운 아침 시간, 부랴부랴 아이를 유치원 차에 태워 보내고 뒤돌아서는 엄마의 해방감을 묘사하는 한국 드라마 장면을 볼 때마다 어찌나 부럽던지. 아이들의 등원, 등교는 물론 방과 후 모든 활동을 엄마가 손수 데려다주고 데리고 와야 하는 이곳.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시간이 오히려 난 행복하던데?"라고 반박할 수 있겠다. 물론 나 또한 여유로운 때는 '아이와의 시간'이라 여기며 이를 즐겼고, 누가 아이를 데려준다 해도 그 사람이 못 미더워 오히려 상대 아이의 라이드까지 자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라이드가 아이가 운전면허증을 딸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면? 다시말해 아이 고등학생 시절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학원 및 아이들의 방과후 활동은 물론 데이트를 시작하는 중고등 학생 엄마들의 경우는 시간에 맞춰 영화관 데이트가 끝나길 기다리며 극장 앞에서 주차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게다가 피아노, 태권도 같은 학원 시간이 대부분 초등 저학년인 경우에는 30-40분도 많아서 데려다주고 나오면 다시 집에 다녀오기도 힘들다. 대부분 거리감이 있는 미국의 경우 장 보기도 타이트한 시간이라 매번 주차장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게 곤욕이다.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 학원차가 얼마나 그리웠던지. 물론 요즘 한국에서도 엄마들이 라이드를 많이 해준다고 하지만, 선택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항상 궁금했던 다른 집 사정. 여유롭고 멋지게만 보이는 미국 맞벌이 엄마들은 도대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우선 모든 미국 엄마들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놀라운 점은 초등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직장을 그만둔 경우가 많았고 3-4년 정도,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육아에 집중하는 경우도 꽤 많다는 것이었다. 이후 다시금 복직을 하거나 다른 일을 찾는 경우가 많았으니 이는 한국에 비해서는 경력 단절을 한 엄마들이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는 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맞벌이 부모 대부분 친정이나 시댁이 근처에 살아서 아이들의 라이드를 도와주고 있었다. 아무리 가족 케어를 중요시하는 미국이라도 출퇴근하는 엄마들이 아이들 학교 라이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70% 미국 워킹맘들은 고로 주변 가족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니를 고용하여 아이들 라이드부터 엄마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 케어하는 것을 전담하게 하거나, 우리처럼 부모 중 한 명이 재택근무를 할 수 있거나 출퇴근이 자유로워 아이 픽업을 직접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의 경우 또한 재택근무를 한다는 조건과 아이의 유치원 및 학교 픽업 시간을 양해해 준 회사의 배려가 있어 일과 양육의 병행이 가능했다 할 수 있다. 그러나 관대하다고 해서 라이드 시간이 일하는 시간에서 빠지거나 일까지 널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 빈 공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일에서는 충실해야겠기에 고로 매일 '내가 스스로 하는 야근'이 꽤나 많다.

대부분 아이들을 픽업해서 부리나케 집에 오면 바로 다시 일에 매진해야 했으니, 방과 후 "다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겠다" 혹은 "친구 집에서 플레이데이트를 하겠다" 하는 아이들의 요청을 한 번도 들어줘본 적이 없어 매번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말해 출퇴근하는 엄마들처럼 쿨하게 라이드를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맡긴 후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육아맘처럼 아이들 케어에 완벽하지도 못하는 애매모호한 입장의 '재택근무 맘'이다 보니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누구보다 많은 죄책감을 갖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기 일쑤였다.


"어머, 집에서 일하면 너무 좋겠어요. 아이들이 필요할 때 해 줄 것 다 해주면서 내 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택근무와 '내가 하고 싶을 때 일하는 프리랜서'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길 바란다. 엄연히 9시부터 5시는 기본 일을 해야 하며, 필요할 때마다 날아오는 메시지와 콜에 답을 해야 하는 상시 대기조 같은 긴장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출퇴근 때 누리는 커피 타임조차 여유롭게 누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루 일과를 돌이켜보면 라이드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재택근무 워킹맘의 하루를 관통하는 리듬이었다. 아침 등교 라이드로 하루를 시작해, 오후 픽업 라이드로 일을 중단하고, 학원 라이드로 저녁을 쪼개고, 다시 픽업 라이드 후 야근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물론 틈틈이 아이가 먹을 간식을 준비해 놓을 수 있고, 빈 공간이 아닌 따뜻한 온기로 방과 후 아이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재택근무 워킹맘의 최고의 이점이니 이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때로는 학원차가 아이를 데려가 주고 데려다주는 그 한 시간이 간절히 그립다. 중고등 학생의 경우 스스로 지하철, 버스 등을 이용해 알아서 이동을 할 수 있는 그러한 환경이 간절할 때가 많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아이는 친구들과 즐겁게 노닥거리고, 나는 죄책감 없이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시간. 어쩌면 라이드는 미국 워킹맘이 치러야 하는 가장 긴 노동이자, 가장 보이지 않는 노동인지도 모른다.


둘 중 어느 것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마음가짐 또한 달라지니, 그 또한 순전히 내 몫이리라. 언젠가 아이가 운전면허증을 따는 그날, 과연 나는 이 라이드의 시간들을 그리워하게 될까, 아니면 해방감에 환호하게 될까. 그리워질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지금일지도 모른다. 그 생각에 오늘도 기꺼이, 아이와 함께하는 차 안 시간을 온전히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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