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IME] 재택근무 맘의 베이비시터 생존기

by 봄치즈

모든 워킹맘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만큼은 일하는 시간에 아이를 돌봐줄 '그 누군가'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고로 친정엄마는커녕 가족 한 명 없으니, 어떻게든 베이비시터를 잘 구하는 것이 큰 미션이었다.


주변 워킹맘들의 이야기는 각양각색이었다.


" 전 정말 중간중간 베이비시터를 계속 바꾸다 보니 나중에는 애가 낯까지 심하게 가리고 더 힘들었어요."


"저도 처음엔 좋은 스패니시 베이비시터를 만났다 싶었는데, 1년쯤 지나서 느낌이 이상해서 온 방에 CCTV를 달아봤거든요. 그런데 집안을 돌아다니며 옷 주머니들을 다 뒤져 나오는 돈들을 가져가는 게 포착되더라고요. 바로 그만두게 하고 그 이후부터는 못 미더워서 누구도 못 부르겠더라고요."


"무엇보다 너무 비싸요. 미국은 특히 인건비가 비싸니까. 내 월급 고스란히 현금으로 베이비시터에게 줄 때마다 회사 그만둘까 고민되더라고요. 제 동생은 비용 때문에 아이 돌 지나서 바로 데이케어 보냈는데 매일 감기 걸려오고 해서 병가 내는 게 힘들어 결국 회사 그만뒀어요."


"뭐 하나 마음에 걸려도 괜히 내 애한테 나쁘게 할까 봐 웬만한 건 그냥 넘기기도 하고 오히려 제가 눈치를 보게 되더라고요."


베이비시터에 얽힌 사연이 한 번 시작되면 엄마들의 대화는 끝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첫째 아이 때는 비용은 조금 더 들어도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하기 위해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한국분을 구하기로 했다. 산후조리를 위해 친정엄마가 미국에 계시는 동안 여러 구인란을 통해 베이비시터 몇 분을 인터뷰했고,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났다. 무엇보다 음식까지 잘하셔서 아이 이유식을 만들거나 종종 식구들 음식거리도 만들어 주셨다. 아이가 유아원 다니기 전, 한국으로 이주를 가시면서 그만두셨으니 거의 꼬박 만 3년 반을 함께했다.


둘째 아이 출산 후에는 첫째 아이 육아로 이미 베테랑 엄마가 된 터라, 음식 등의 도움은 받지 못해도 비용이 저렴한 스패니시 베이비시터를 소개받았다. 무엇보다 지인의 아이를 4년 넘게 봐준 터라 이전부터 종종 봤었고 믿을 만하다는 추천도 받았다. 둘째 태어날 때부터 이사 갈 때까지 꼬박 3년 봐줬으니, 이 또한 오래 이어진 감사한 인연이다.


베이비시터를 잘 만나 오래갈 수 있었던 데는 '최고의 인복'이라는 운이 작용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을 선정하고 함께 지내는 데 있어 나만의 원칙은 있었는데 이 원칙들이야말로 그들과의 오랜 인연을 지속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첫째, 말이 너무 많지 않고 특히 한국분의 경우 자기 과거사를 많이 이야기하는 사람은 피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으나, 아이를 사랑하고 잘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지 나와 사적인 이야기까지 나눌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며 친하게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 서로의 선을 넘으며 베이비시터에게 되려 잔소리를 들어 불편한 관계가 됐다는 케이스도 종종 보아온 터. 적정선의 거리를 지키는 관계야말로 오래간다.
둘째, 아이의 스케줄을 철저히 기록하도록 했다. 산후조리원이 없는 미국이기에 불편함도 있었지만 대신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올곧이 내가 보면서 3개월간 아이를 잘 관찰해 왔다. 낮잠, 식사, 배변, 산책 시간 스케줄을 일지에 적어 그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켜왔다. 베이비시터에게도 내가 했던 대로 시간을 기록하도록 했고, 이는 그날의 아이 스케줄을 체크하는 데도 매우 도움이 되었다. 매번 내가 안 본 시간 동안 뭐 했는지 일일이 감시하는 양 물어보지 않아도 일지만 보면 한눈에 다 볼 수 있었다. 또한 아이가 이미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기에 해당 시간이 되면 낮잠도 잘 자는 편이라, 결론적으로는 베이비시터도 이를 좋아했고 가장 보기 편했던 아이가 말해줬다.
셋째, 명확한 경계를 세웠다. 재택근무인 집은 곧 나의 일터이기도 하다. 따라서 책상 있는 내 공간은 아이에게도 베이비시터에게도 '엄마의 일터'라는 인식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우리 회사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었으나 점심시간대가 여유롭다고, 또한 집에 같이 있다고 해서 베이비시터와 같이 먹지 않았다. 꼭 같이 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생기면 그 또한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필요한 경우 회사 일정을 공유하기도 했는데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이나 특별히 조용히 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시간을 미리 적어 냉장고에 붙여두었고, 베이비시터 또한 그 시간대에는 아이방에서 놀거나 산책을 나가도록 했다.
이것에 앞서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것은 신원 확인이다. 불법 이민자들도 많고 실제로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아이를 납치해 본국으로 가버린 사건도 예전에 있었기에, 미국에서는 인터뷰 때 반드시 제출받아야 할 부분이다. 여권 앞뒷면을 복사해 두고, 이전 베이비시터 경력이 있으면 전 고용주에게 연락해 의견을 구할 수도 있다.


시작부터 자기가 세워둔 기본 원칙이 명확히 서로 공유되면 사실상 이후 진행은 생각보다 훨씬 수월해진다. 오히려 '좋은 게 좋다'며 처음에는 두리뭉실 시작했다가 뒤늦게 생기는 불만으로 서로 얼굴 붉힐 일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다. 나 또한 인터뷰 때부터 미리 내가 원하는 바를 확실히 말씀드리고 부탁드렸더니 오히려 상황을 잘 이해해 주시고 적극적으로 따라주셨다. 이러한 일관적인 일정은 서로의 관계 또한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누구보다 서로를 배려하는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스페인계 베이비시터의 경우, 특별히 먼저 알아서 도움을 제안하거나 눈치껏 시간 날 때 빨래를 개어주는 등의 센스는 없었지만 그들의 특성상 '내가 부탁하고 시키는 것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잘 따라 해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또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있는 나에게는 오히려 잘 맞는 사람이었다.



물론 아이 어릴 적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혜택이다. 아이와 한집에,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엄마로서 큰 안심이 된다. 아이가 뭘 하는지 궁금하거나 유난히 마음이 쓰일 때 언제든 방문만 열고 나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짬이 나면 아이 식사 시간에 나가 이유식을 직접 먹일 수도 있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 나가 꼭 껴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쉽지만은 않았다. 방문 너머 들려오는 아이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면, 혹시 회의 중 다른 사람들에게도 들릴까 수시로 무음인지 체크해야 했고 방문 아래 틈에 담요를 남몰래 밀어 넣기도 했다. 아이가 아프거나 컨디션이 안 좋아 엄마와 유독 떨어지기 싫어하는 날에는 베이비시터도 소용없어서, 하루 종일 아기띠를 하고 앉아 잠든 아이를 안은 채 타자를 치는 날도 많았다.


반대로 베이비시터에게도 재택근무하는 엄마는 그리 편한 상대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일거수일투족 감시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을 봐준 베이비시터들은 '이런 열악한 환경'을 알고 수락한 사람들이니, 어쩌면 이미 검증된 분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시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 아이를 봐준 이분들이 있어 안정적인 지금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가족 없이 지내야 했던 우리에게는 더욱 감사한 존재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안부 인사를 드리며 감사함을 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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