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TIME]부끄러웠던 자랑

멀티태스킹에서 몰입으로

by 봄치즈

"이번 달 자신의 매력을 알려주세요. 이번 주 금요일까지 제출해 주세요."


총무팀에서 이메일이 도착했다.

우리 회사는 한 달 주기로 사내 웹사이트 첫 페이지를 바꾼다. 직원들이 돌아가며 사진과 함께 자신의 모토, 즐겨 마시는 음료, 좋아하는 캐릭터 등 미리 여러 준비된 질문 중 몇 가지를 골라 회사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다. 연말이나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회사 이벤트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팀 외에 다른 팀 사람들과 교류하기가 쉽지 않으니, 이렇게라도 서로 알아가 보라는 회사의 취지가 담긴 것이었다.


원래 나서기보다는 조용히 있길 좋아하는 성격인데, 온 회사 사람들이 보는 페이지에 나를 소개하려니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에 기회가 온 걸 보면, 회사에 빨리 적응하라는 배려인 듯도 싶었다. 실제로 그 달의 주인공이 새로이 업데이트되면 동료들과 이야기할 때 그 내용을 화제로 삼기도 하고, 페이지의 주인공에게 쉽게 다가가 그 소재로 자연스러운 스몰토크를 시작하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고심하며 글을 썼다. 그중에서 여러 질문 중 모두가 공통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 유독 고민스러웠다.


"슈퍼히어로의 파워처럼 쓸 수 있는, 나만의 장점을 하나 골라 자랑해 주세요."


'긍정적이다.' '마인드 컨트롤을 잘한다.' '계획적이다...' 몇 개의 문장들이 떠올랐다. 이 중에서 나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활발한 회사 분위기에 어울릴 만한 것은 무엇일까.

고심 끝에 쓴 나의 답변은 이랬다.


"멀티태스킹 능력. 아이를 한 손에 안고 흔들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냄비를 저으며 음식을 준비하고, 막 걸려온 전화에 스피커폰으로 여유롭게 응대할 줄 아는 능력자. 여러 일에 대한 효율적인 처리 기술이 있다면 같은 30분도 세 배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내 성격과는 맞지 않는 꽤 낯간지러운 자랑이었지만, 이 정도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어머, 엄마로서의 삶이 보이더라', '흥미로웠어!'라는 반응을 끌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아이가 있는 엄마들에게 공감이 된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는 '역시 꽤 잘 썼어'라며 어깨가 으쓱했다.


물론 그건 이 말들을 접하기 전까지의 일이다.


멀티태스킹은 그저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망칠 기회일 뿐이다. 우리는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는 있지만, 한 번에 두 가지 일에 '집중'할 수는 없다.
- <원씽> 게리 켈러


책 <원씽>에서 거듭강조한 '성공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단 하나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은 나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레비틴 또한 <정리하는 뇌>에서 멀티태스킹이 뇌의 에너지를 얼마나 고갈시키는지 설명했다.


멀티태스킹은 뇌의 연료(포도당)를 빠르게 연소시킨다. 사람들은 여러 일을 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작업 전환 비용(Switching Cost)'만 지불하며 뇌를 지치게 할 뿐이다. 이는 창의적인 사고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비슷한 취지로 컴퓨터공학 교수인 칼 뉴포트는 저서 <딥 워크>에서 몰입의 힘을 강조하며 멀티태스킹이 남기는 '주의 잔류물'에 대해 경고했다.


A 업무에서 B 업무로 전환할 때, 당신의 주의력은 즉시 따라오지 않는다. '주의 잔류물(Attention Residue)'이 A 업무에 남아있어 B 업무의 성과를 떨어뜨린다. 멀티태스킹은 지능 지수를 일시적으로 10점 낮추는 것과 같다.

결국 멀티태스킹은 실제로는 '전환'일뿐, 인간의 뇌는 병렬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멀티태스킹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집중력을 이리저리 옮기는 '콘텍스트 스위칭'에 불과하며, 이 과정에서 생산성을 오히려 최대 40%나 저하시킨다.


이는 나아가 도파민과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새로운 자극(휴대폰 문자 확인, 음식이 끓는 소리 등)에 반응할 때마다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되어 기분이 좋아지지만, 이는 '가짜 성취감'일뿐 실제 업무의 질은 떨어진다는 것.


반대로 인간은 몰입할 때 평소의 수십 배에 달하는 잠재력을 발휘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칼 뉴포트는 "1시간의 깊은 몰입은 산만한 상태에서의 8시간보다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한다"라고 말했고, 자기 계발 전문가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책 <개구리를 먹어라>에서 "중단 없이 한 가지 일에 100% 집중하면 작업 시간을 50% 이상 단축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작업 밀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나아가 책 <몰입>에서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란 '삶이 나를 위해 흐르는 듯한 최적의 경험'이라 정하고 있었다.

"몰입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들어 시간의 흐름조차 잊는 상태, 즉 '자아의 상실'이 일어날 때 인간은 가장 큰 행복과 성취감을 느낀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책과 강의를 통해 '멀티태스킹'의 허구와 '몰입'의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얕은 지식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하는 능력'을 자랑했던 그때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몰입의 중요성을 안 후 내 삶도 조금씩 바뀌었다. 단순히 일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성취감과 만족감까지 높인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한 번에 하나씩' 그 순간 내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마음에 충족감을 주고 보람을 느끼는 날들이 많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것을 몸소 느낀 후, '매 순간에 대한 몰입'은 지금까지 염두에 두고 지키려는 삶의 태도 중 하나가 되었다.


만약 어떠한 일을 하던 중 갑자기 해야 할 다른 일이 떠오르거나 그로 인해 집중도가 떨어질 때도 있다(이메일이나 메시지 알림이 울리는 등). 그럴 때는 재빨리 옆에 펼쳐둔 다이어리에 그 일을 적어둔 후 다시 돌아와 현재 하던 일을 끝까지 마치려 한다. 적어뒀으니 애써 잊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면 더더욱 따로 모아뒀다가 30분 정도 시간을 내서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만약 내가 회사 뉴스레터 의뢰를 받았던 그때로 돌아가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떻게 쓸까.


"여러 일이 한꺼번에 쏟아져도 하나하나에 매 순간 몰입해서 최선을 다할 줄 아는, 자기 충족감을 매일 만끽하고 있는 프로 워킹맘"


모두에게 어필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예전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소개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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