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력보다는 체력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못할 것이 없다' 내 여러 인생 기조 중 하나였다.
한국의 고등학교 입시 지옥도, 한 달의 2/3를 야근과 밤샘으로 버텨야 했던 직장 생활도 잘 버텨왔는데 못할게 뭐가 있으랴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둘째 출산 이후 복직을 앞두고 퇴사를 고민한 순간도 있었지만, '한번 해보자' 마음먹은 이후로는 워킹맘의 삶 또한 전반적으로 잘 이어온 듯했다. 미국의 이민 산모들이 대부분 겪는다는 잠깐의 향수병이나 우울감도 거의 느껴본 적이 없었으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분명히 느꼈을 것이다. 다만 그 감정을 인지할 틈조차 없이 바쁘게 지냈던 것일 뿐.)
그러나 매일 달려오기만 한 나에게 드디어 고비가 찾아왔다. 둘째 아이 두 돌이 후 어린 시절부터 고질병이었던 편도선염이 끊임없이 재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겼지만, 갑상선 호르몬 수치까지 이상이 생겼다. 편도선염에는 필수였던 항생제 10일 치를 먹고 나면 괜찮은 듯하다 한 달 후 또 편도선염이 찾아왔다. 자다가 고열과 극심한 통증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울면서 운전해 응급실로 달려간 날도 여러 번.
웬만한 증상에는 항생제 처방을 잘해주지 않는 미국이지만, 이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항생제 계속 먹게 되었고 일 년도 안돼서 총 여섯 번 이상 편도선염이 재발하자 의사는 편도선 절제술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아플 때마다 편도선을 떼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던 터라 나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술과 회복 기간에 대한 설명을 들었을 때는 주저할 수밖에 없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수술 및 회복 기간으로 2주는 잡아야 할 만큼 쉽지 않은 수술이에요. 수술 후 몇 시간 뒤에 집으로 퇴원하게 되는데, 상처가 아무는 동안 피를 계속 토하게 됩니다. 너무 아프면 타이레놀을 드셔야 하고요. 입원이나 별도의 처방약은 없어요. 절제된 부위가 자연적으로 아물 때까지 2주 정도 걸리니까, 남편분이나 아이를 봐줄 분이 곁에 있어야 할 거예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한국에서 편도선 절제술을 받은 친구 이야기로는, 수술 후 3일 입원하는 동안 모르핀 덕분에 통증도 거의 없이 수월하게 치료받고 나왔다고 들었었다. 출산이나 아이들 수술 때도 이미 경험한 일이라 입원을 길게 시키지 않는 미국 의료 시스템은 알고 있었지만, 수술 후 절제된 부분이 자연적으로 아물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게다가 남편이 회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쓸 수 있는 휴가가 5일도 채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셔올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렇게까지 하며 이 끔찍한 수술회복(?)의 2주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한국에 나가서 입원 수술을 받고 오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당장 한국으로 나갈 수 없는 형편이니 우선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목표로 그때까지 어떻게든 편도선염 없이 건강을 유지해 보자고 다짐했다. 그리고 의사에게 여러 조언을 구했다.
"아무래도 너무 피곤하고 면역력이 떨어진 게 원인이에요. 무조건 7~8시간 충분히 주무세요. 커피도 많이 드시는 것 같은데 다 끊어서 수면의 질을 높이시고요. 비타민 D를 포함한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기세요. 규칙적인 운동도 필수입니다. 자기 전에 소금물 가글도 꼭 하시고요. 더 이상 항생제를 반복해서 먹는 건 무리예요. 만약 한번 더 걸리면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미국에서의 고통스러운 수술을 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의사의 단호한 말은 큰 효과가 있었다. 하루에 세 잔씩 마시던 커피를 그날 이후로 끊었고, 수치가 너무 낮아 처방까지 받아야 했던 비타민 D를 비롯한 영양제도 꾸준히 챙겼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운동이지만, 그나마 즐길 수 있는 걷기를 하루에 두 번씩 야외와 실내 짐에서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았던 이 루틴이 일주일만 꾸준히 하니 생각보다 쉽게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한 달 후 한국에서 편도선 수술을 받기로 계획했지만, 그 사이 편도선염은 물론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았고 오히려 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버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가을이 되자 다시 독감이 찾아왔고, 목도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생활을 보니 운동량을 더 늘려야 할 것 같아요. 걷기 말고 달리기나 근력운동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20대인 줄 아세요? 정신력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어요. 이제는 체력이 기본입니다."
살고 싶다면 운동을 하라. 의사의 조언은 이제 거의 명령이자 나의 미션이 됐다. 그럼에도 죽기보다 싫은 게 운동인데, 어쩌랴. 조심스레 타협을 시도해 본다.
"제가 예전에 요가를 가끔 했었는데, 도움이 될까요?"
"요가는 유연성 운동이라 체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근력운동을 접목한 파워 요가라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해봐도 계속 아프다면 효과가 없는 거예요."
다행히 파워 요가도 해본 적이 있고 즐겼던 터라 극적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제발 도움이 되길 하는 간절한 바람이 하늘을 감동시킨 것인지, 그해 겨울은 가벼운 감기 한 번으로 지나갔다. 다음 해에는 편도선염 없이 감기 세 번, 그다음 해에는 감기 한 번. 그 이후로는 감기조차 거의 걸리지 않게 되었다.
역시 직접 겪는 것만큼 큰 배움은 없다. 백날 주변에서 '운동해라' 해봤자 소용없더니, 내 몸이 직접 아프고 나서야 안 할 수 없는 지경이 됐고, 그 효과를 눈으로 보고 나니 운동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남편 또한 매일 골골거리며 밤이면 지쳐 쓰러져 있는 아내보다 건강한 아내가 좋았을 것이다. 고맙게도 일주일에 세 번씩 저녁을 맡아주며 요가 수업 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줬다.
이후 십여 년 동안 편도선염은 다섯 번 정도 걸렸을 것 같다. 일 년에 다섯여섯 번씩 앓던 때와 비교하면 정말 눈부신 변화다. 물론 지금은 그때만큼 규칙적으로 요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내 우선순위 목록에서 최하위에 머물러 있던 '건강'에 비로소 제대로 눈을 돌리게 된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다행스럽다. 어쩌면 '지금이라도 꼭 챙겨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요즘도 무기력해지거나 번아웃의 신호가 느껴지면, 울면서 응급실로 달려가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바로 운동화 끈을 맨다.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잠깐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환기되고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2~3주만큼은 걷기와 요가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이제는 안다. 강한 정신력이 실행력의 큰 바탕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실행을 건강하게 오래 이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끈기 또한 건강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도 찬바람을 가르며 걷고 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