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치즈 Oct 07. 2021

잊고 있었던 존재

일 육아에만 정신을 쏟고 있다면

“오늘 점심시간 괜찮을 것 같아? 시간 괜찮으면 가까운데 나가서 간단히 점심 먹자고.”


오전 11시 무렵 남편이 조용히 내 책상으로 다가와 묻는다.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된 올 가을. 학교 온라인 수업이 없어지면서 정말 오랜만에 조용한 오전 시간을 갖게 되었다. 물론 회사일을 해야 하지만 올곧이 내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작년 4월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한 남편이 여전히 집안에 함께 하지만 각자의 공간에서 매일 바쁘게 회의 및 일을 처리하다 보니 점심시간에만 식탁에서 잠깐 만날 뿐,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응, 오늘은 일이 그리 많지 않아서 괜찮아.”


집안에 오래 있다 보니 점점 더 굼떠지는 몸. 사실 남편이 권하지도 않았다면 오늘도 후다닥 국에 밥 말아먹었을 판이다. 그래도 모처럼 남편이 요청하는데 나가봐야지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12시 무렵, 사람이 덜 붐빌만한 가장 가까운 식당을 정하고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와, 벌써 단풍이 많이 졌네.”


이미 시작된 가을의 단풍들이 이제야 보이다니. 사실 집 안에서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나가게 되는 뒤뜰엔 단풍이 쌓여가건만 ‘차가워진 바람’ 핑계로 더욱 ‘집콕’을 고집하게 되는 요즘인지라, 갑자기 단 둘 외출을 권해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아이들도 학교 가니까 시간 될 때 종종 나와서 같이 점심 먹자고. 바람도 쐬고. 특히 자기는 너무 집에만 있었잖아.”


평소 자상한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건만 나를 생각해주는 남편의 담담한 말이 어느 때 보다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그 간 ‘아이들에게만 신경 쓰느라 남편에게 너무 무관심했나’ 하는 미안함도 든다.   


차 한잔 들고 돌아오는 길. 집 앞마당에 쌓여있는 단풍잎들이 예뻐 내 발과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남편이 다가와 쓰윽 자신의 발을 들이민다. 마치 '나 여기 있어'라고 말하 듯.


팬더믹 시기, 집 안에서 네 가족 복작거리며 지내오다 보니 일과 육아에 아등바등하며 매일을 바쁘게 보내온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보니 그 기간 큰 일없이 무한하게 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알게 모르게 도와준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 끝나면 ‘나에게 자유 시간을 준다’고 매일 부지런히 아이들 데리고 공원에 나가 야구, 테니스를 함께 쳐주고 (물론 그 시간에 난 밀린 집안일을 하지만), 이제는 당연한 자신의 일인 양 빨래, 설거지를 도맡아 하는 남편. 어쩌만 가장 고마워해야 할 사람인데 표현을 너무 안 해온 것은 아닐는지. 집 안으로 들어서기 전, ‘자기도 고생했어’라는 말과 함께 엉덩이 톡톡 쳐주며 그 간의 노고에 고마움을 표시해본다.

 

너무 다른 성격이었건만  지금에 와서는 누구보다 좋은 팀워크를 발휘하며 서로를 조용히 배려하고 있는 우리. 특히나 남편이란 존재는 일하는 엄마인 내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고마운 존재이기에. 그 역할에 가끔씩 감사 표시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로에게 집중하고 고마움을 전하며, 나 스스로에게도 선물처럼 줄 수 있는 시간, '단둘 데이트'를 종종 이용해볼까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