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오래 달리기 중입니다

by 봄치즈

더욱 차가워진 바람에 몸이 절로 움츠려 드는 요즘이지만 오늘만큼은 꼭 나가리라 마음을 먹었다. 억지로라도 달려야 할 날이 있는데 그날이 오늘인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달리는 느낌을 좋아한 적이 있다. 누가 봐도 약골인 내가 학창 시절 체력장 여러 종목 중에서도 가장 자신 있어했던 것은 오래 달리기. 어릴적부터 아빠따라 산을 타며 걷기에 자신 있었던 것이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성 싶다. 그렇다고 단거리 달리기에서 필요한 강력한 피지컬은 고사하고 초반 스퍼트는 더욱 없다. 매일 피곤해하는 지금의 저질체력이 어디 가겠는가.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래 달리기는 단거리 달리기의 연속이면서도 이기는 전략법은 조금 달랐다. 오래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만의 페이스 조절과 지구력. 저략만 잘 짠다면 단거리 달리기보다는 승산이 있는 종목이었다.


아쉽게도 나에겐 어느 한 분야에서 특출함을 보이는 타고난 재능은 없었다. 대신 이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꾸준함을 부여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강점은 좋은 기록을 위한 오래달리기 전략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무슨 일을 하기 전 목표를 구체화시키고 현시점의 것을 분석하는 것에도 능한 편. 체력장 날짜가 공표되면 바로 그날 부터 매일 자기 전 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실전처럼 연습했다. 부족하면 더 많이 연습하는 것이 답. 얼마큼 뛰어야 숨이 차고, 그것을 얼마나 지속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막판의 스파트를 위해서는 어느 속도로 달려야 하는지 분석하고 체크했다. 물론 지금처럼 핸드폰도 없고 러닝 하는 사람들을 위한 앱 또한 당연히 없으니 시계로 체크하고 공책에 기록했다.


나름의 전략을 세우고 남들보다 오래 더 많이 노력하고 연습하는 것. 이 같은 방법은 비단 오래달리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도 통했다. 단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노력시간이 든다는 단점이 있을 뿐, 그에 따른 결론은 '토끼를 이기는 거북이처럼' 대부분 승리였다. 그로 인해 나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더 강해지고 모든 일을 대하는 나만의 신념도 더 강해졌으리라.


"주변의 시선에 굴하지 말고 내가 정한 나만의 속도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끈기를 갖고 오랜 시간 나아가는 것."


일정한 속도로 달리며 그 과정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직접 느끼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게 해준 오래 달리기. 학교 졸업 후 체력장이 더 이상 필요해지지 않게 되면서 스스로의 의지로 뛸 일은 점점 줄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마감 핑계를 댔고, 결혼 후 차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한 미국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그나마 즐겨하던 걷기도 거의 안하게 되었다. 게다가 둘째 출산 후에는 갑상선 저하증에 몸의 여러 기관들에 문제가 생기니 달리기는 감히 생각치도 않았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올해 들어 주변의 지인이 권유한 '5분 달리기'로 시작하게 된 동네 달리기. 비록 운동장 몇 바퀴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리이지만 달리면서 다시금 그 옛날 희열을 느끼게 한 '나만의 속도'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중학교 시절때하고 지금은 많이 다르다. 달리기 속도도 많이 늦어졌고, 그 시간 또한 5분으로 턱없이 짧아졌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내신 성적에 반영될 성적을 위한 목표 기록이 없고 오히려 '오늘 하루 달리기 했다'는 작은 성취감에 오늘의 시작을 설레여하기면 하면 된다.


그러나 역시 바쁜다는 핑계거리 찾게 되는 날들이 종종있다. '가을을 탄다'는 핑계로 오전 달리기를 거른 요 며칠 유독 '지금 잘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많이 몰려들었다. 회사 업적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서 일에서도 불만이었던 것들이 더 커져보이고, 젊은 아이들을 따라가기 버거운 대학원 공부에서는 계속적으로 좌절감이 들었다. 아이 학교 개학 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학부모들과의 모임 후에는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방과 후 활동에 조바심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나 역시 남들과 다를 것이 없구나'하는 이상한 자괴감마저 든다.


안다. 이럴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밖으로 나가 달려야 한다는 것을. 달리면서 나에게 되물어본다.


'한 번도 단거리 달리기로 이겨본 적이 없었잖아. 항상 나에게 맞는 속도를 찾아내 뛰었고, 오래 시간 투자해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 그치?"


나오길 잘했다. 다시금 내 페이스를 체크해보고 그것에 확신을 갖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그 결정에도 후회가 없는 법.


오늘따라 달리는 내 앞으로 한없이 떨어지는 노란색 단풍잎들. 마치 내 말이 맞다며 응원을 해주는 듯한 느낌. 황금색으로 빛나는 길 위로 더욱 힘차게 발을 내딛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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