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동안의 가출

엄마의 온전한 시간

by 봄치즈

'이제 내 할 일을 해보자!' 마음 굳게 먹고 책상머리에 앉았건만 자꾸 옆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이 눈에 밟힌다. '저것만 주워야지' 하면서 일어났는데 어느새 청소기를 돌리고 이어 걸레질을 하고 있는 나. 밀린 집안일을 하다 보니 토요일 하루가 또 그렇게 지났다.


어느덧 코앞으로 다가온 대학원 두 번째 중간시험. 지난번에 망친 시험 점수를 만회하려면 매일 날밤을 새도 모자랄 판인데 집에 있다 보면 자꾸 하게 되는 집안일. 아이들이 자고 난 후에야 갖게 되는 밤늦은 고요한 시간에는 왜 이리 잠이 쏟아지는지. 매일 내 나이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억지로라도 공부할 수 있는 공부방이나 오피스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한국의 그 흔한 독서실 하나 보이지 않는 미국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가족일들에 제일 먼저 미뤄지는 나의 일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일요일 오전 가족들에게 3시간 가출을 선포했다. 일요일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여는 동네 근처 도서관에 가서 단 세 시간이라도 조용히 내 일에 집중해보리라. 단단한 각오와 함께 봐야 할 책들과 노트북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선 무거운 발걸음. 그러나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집을 나서는 그 순간, 가슴속에 선선한 가을바람이 스며들더니 순식간에 마음 한켠이 설레기 시작했다. 더불어 살랑거리는 마음처럼 가벼워지는 발걸음. 어깨를 짓누르는 무언가에서 해방된 홀가분한 느낌이다. 그저 서야 그 간 보이지 않았던 마당 가득 쌓인 낙엽들도 눈에 들어오니. 11월, 어느덧 늦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내친김에 더해보자. 유튜브에서 가을에 어울리는 지난날의 노래들을 들으며 가을의 감성에 빠져들어본다.


도서관에 도착한 후에도 한 동안 도서관 통유리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흩날리는 낙엽을 바라봤다. 사실 특별히 생각한 것도 추억한 것도 없다. 그저 멍한 상태로 지금의 조용한 시간을 느낄 뿐. 그저 '지금 이 순간', 아름다운 계절 가을 속 한가운데 있는 나라는 존재가 있음을 느껴본다. 최근 느낀 가장 평온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매일 쉴 틈 없이 돌아갔던 나의 뇌와 마음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쉼을 주는 것. 요즘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위한 짧지만 행복한 가출. 앞으로도 종종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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